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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7.02.13 월든 - 헨리 데이빗 소로우
  2. 2017.02.10 북바인더를 소개합니다.

월든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
출판
은행나무
발매
2011.08.22.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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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의 예찬과 문명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담긴 불멸의 고전"

지은이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책소개 : 19세기 미국의 위대한 저술가이자 사상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대표작 <월든>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를 더해가고 전 세계 독자들을 끊임없이 새로이 각성시키는 불멸의 고전이다. 그동안 국내에 수많은 번역본이 출간되었지만, 강승영 번역의 <월든> 2011년 개정판이 새롭게 출간되었다.

1993년 초판을 출간한 이래 지금까지 국내에서 약 30만 부가 판매된 <월든>. 번역자 강승영은 6년 전쯤부터 '생의 마지막 작업'으로 그 '결정판'이라 할 만한 것을 만들기 위해 미국의 소로우 학자들과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기존 개정 2판에서도 시정되지 못한 약 400여 곳의 단어 및 문장을 수정하여 이번 완결판을 내기에 이르렀다.

소로우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으나 안정된 직업을 갖지 않고 측량 일이나 목수 일 같은 정직한 육체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을 선호했다. 이 책은 1845년 월든 호숫가의 숲 속에 들어가 통나무집을 짓고 밭을 일구면서 소박하고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2년간에 걸쳐 시도한 산물이다. 대자연의 예찬인 동시에 문명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며,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구속받지 않으려는 한 자주적 인간의 독립 선언문이기도 하다.

1852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이 책 <월든>은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했지만, 오늘날 19세기에 쓰인 가장 중요한 책들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으며, 전 세계의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고 사랑받고 있다. 인도의 성자 마하트마 간디,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법정 스님, 한비야 등 많은 이들을 감동시키는 동시에 책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해왔다.





#14
노동자는 단순한 기계 이외에 다른 아무것도 될 시간이 없다. 인간이 향상하려면 자신의 무식을 항상 기억해야 하는데, 자기가 아는 바를 수시로 사용해야만 하는 그가 어떻게 항상 자신의 무식을 기억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를 평가하기 전에 그에게 가끔 무상으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며, 우리의 강장제로 그의 기운을 복돋아주어야 하겠다.
인간성의 가장 훌륭한 면들은 마치 과일 껍질에 붙어 있는 과분 처럼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만 보존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부드럽게 다루지 않는다.

#17
인류의 이른바 유희나 오락 밑에는 무의식적이나마 판에 박힌 절망감이 숨겨져 있다. 이것들 안에는 진정한 놀이가 없다. 왜냐하면 놀이는 일 다음에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망적인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 지혜의 한 특징이다.

인간의 주목적은 무엇이며, 인생을 살아가는 데 진실로 필요한 수단과 방편이 무엇인가 하고 교리문답식으로 생각해볼 때 사람들은 고의적으로 통상적인 생활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어떤 생활방식보다도 그것을 선호했기에 말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들은 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진정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영특하고 건전한 품성을 가진 ㅏ람들은 오늘도 훤히 솟구쳐 태양을 잊지 않는다. 잘못된 고정관념은 지금이라도 버리는 것이 낫다. 아무리 오래된 사고방식, 혹은 행동방식일지라도 증명되지 않는 것을 믿어서는 안 된다.
오늘 모든 사람들이 진리라고 받이들이고 묵과한 것이 내일에는 거짓으로 판명될지도 모른다. 들에 단비를 내려줄 구름으로 믿었던 것이 한갓 견해라는 이름의 연기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나듯 말이다. 노인네들이 불가능하다고 한 일도 여러분은 시도해서 이루어내고 있지 않은가?

#75
젊은이들이 당장에 인생을 실험해 보는 것보다 사는 법을 더 잘 배울 수 있는 방법이 또 있겠는가? 그렇게 하면 수학 공부만큼이나 그들의 정신을 단련시키게 될 것이다.

 

#99
나는 5년 이상을 이와 같이 오직 육신의 노동만으로 생계를 유지해왔다. 그 결과, 1년 중 약 6주일간만 일하고도 필요한 모든 생활비용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름의 대부분과 겨울 전부를 나는 순전히 공부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었다. 한때 나는 학교 경영에 갖은 노력을 기울인 적이 있었다. 그러나 비용이 수입과 맞먹거나 초과하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교육자다운 사고와 신념을 가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직업에 맞는 복장을 하고 준비를 해야 했으며 그외에도 시간을 많이 빼앗겼던 것이다. 또한 같은 인간에 대한 사랑의 감정에서가 아니고 단지 먹고살기 위해서 아이들을 가르쳤으므로 그것부터가 실패하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101
내가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얽매임이 없는 자유이고,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더라도 나는 행복하게 살아 나갈 수 있으므로 값비싼 양탄자나 다른 호화 가구들, 맛있는 요리, 또는 새로운 양식의 고급 주택 등을 살 돈을 마련하는 데에 내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만약 이런 것들을 얻는 것에 하등의 거리낌을 느끼지 않고, 또 일단 얻은 다음에 그것들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이나 실컷 그런 것들을 좇으라고 하라. 어떤 사람들은 부지런하고, 일하는 것 자체가 좋아서 일을 열심히 하는 것 같이 보인다. 또는 일하지 않으면 나쁜 길에 빠지니까 일에 몰두할 수도 있으리라.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현재로서는 할 말이 없다.
현재 누리고 있는 여가보다도 더 많은 여가가 생기면 어찌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나는 현재의 일을 곱절로 늘리라고 권하고 싶다. 그래서 빚을 다 갚고 자유의 증서를 얻을 수 있도록 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날품팔이가 가장 자유스러운 직업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 직업은 한 사람 먹고사는 데 1년에 30일 내지 40일만 일하면 된다. 게다가 그의 일과는 해가 지는 시점에 끝나며, 그 후의 시간에는 자기 노동과 관계없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러나 항상 이 궁리 저 궁리를 해야 하는 그의 고용주는 1년 내내 숨 돌릴 틈이 없는 것이다.

 

#129
내가 숲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 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안타까워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으려고 했으니, 삶은 그처럼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정말 불가피하게 되지 않는 한 체념의 철학을 따르기는 원치 않았다.
나는 인생을 깊게 살기를, 인생의 모든 골수를 빼먹기를 원했으며, 강인하게 스파르타인처럼 살아, 삶이 아닌 것은 모두 엎어버리기를 원했다. 수풀을 넓게 잘라내고 잡초들을 베어내어 인생을 구석으로 몰고 간 다음에, 그것을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압축시켜서 그 결과 인생이 비천한 것으로 드러나면 그 비천성의 적나라한 전부를 확인하여 있는 그대로 세상에 알리고, 만약 인생이 숭고한 것으로 밝혀지면 그 숭고성을 스스로 체험하여 다음 여행 때 그에 대한 참다운 보고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이 악마의 것인지 또는 신의 것인지 이상하게도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으며, 사람이 사는 주요 목적은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으로부터 영원한 기쁨을 얻는 것'이라고 다소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 같다.

 

#133
이런 가정과 이런 국가(파산 상태?)에 대한 유일한 구제책은, 엄격히 절약하고 스파르타인들 이상으로 생활을 간소화하고 목표 의식을 향상시키는 것 뿐이다.

 

#134
왜 우리들은 이렇게 쫓기듯이 인생을 낭비해 가면서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배가 고프기도 전에 굶어 죽을 각오를 하고 있다. 사람들은 제때의 한 바늘이 나중에 아홉 바늘의 수고를 막아준다고 하면서 오늘 천 바늘을 꿰매고 있다. 일, 일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할 중요한 일 하나 하고 있지 않다. 단지 무도병에 걸려 머리를 가만히 놔둘 수가 없을 뿐이다.
내가 만약 불이 난 것 처럼 지금 교회의 종을 몇 번 치기라도 하면 콩코드 주변의 자기 농장에서 일하는 모든 남자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그처럼 여러 가지 일로 바쁘다고 변명하던 이 남자들은 물론 아이들과 여자들까지도 만사를 제쳐 두고 종소리를 듣고 달려올 것이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자면, 불을 끄려는 것보다는 불구경을 하려는 목적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어차피 타버릴 것이라면, 또 불을 낸 것은 우리가 아니니까 하면서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불 끄는 것을 구경하고 그 작업에 한몫 끼려는 것인데, 왜냐하면 불끄는 것도 꽤 재미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불타는 건물이 마을 교회라도 상관이 없는 것이다.

#135
그리고 나는 신문에서도 기억해 둘 만한 뉴스를 읽은 적이 없었다. 어떤 사람이 강도를 당했다든가, 살해는 당했다든가, 사고로 죽었다든가, 어떤 집이 불에 타고, 어떤 배가 침몰하고, 어떤 증기선이 폭발했다든가, 어떤 소가 서부 철도 노선에서 기차에 치이고 어떤 미친개가 죽임을 당했다든가, 겨울에 메뚜기 때가 나타났다든가 하는 신문에 실린 소식은 두 번 읽을 필요가 없다. 한 번이면 충분하다. 원칙만 알면 되지 무수한 실례와 응용을 구태여 들을 필요가 무엇인가? 철학자에게 소위 뉴스라는 것은 모두 가십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편집하거나 읽는 사람은 차나 마시고 있는 늙은 부인네들뿐이다.

#137
뉴스가 도대체 무엇인가? 그보다는 시간이 지나도 낡지 않는 것을 아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속임수와 기만이 가장 건전한 진실로 존중을 받고 있으며, 반면에 진실은 거짓으로 여겨지고 있다. 만일 사람들이 진실만을 똑바로 보고 속임수를 용납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지금과 달리 동화나 아라비안나이트의 이야기처럼 즐거운 것이 될 것이다. 만약 우리가 필연적인 것과 당연히 존재할 권리가 있는 것만을 존중한다면 음악과 시가 거리에 흘러넘칠 것이다. 우리가 서두르지 않고 분별력을 발휘할 때, 오직 위대하고 가치 있는 것들만이 항구적이고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며, 사소한 두려움이나 사소한 쾌락은 참된 현실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숭고한 진리는 항상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140
하루를 자연처럼 의도적으로 보내보자, 그리하여 호두껍질이나 모기 날개 따위가 선로 위에 떨어진다고 해서 그때마다 탈선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 일찍 일어나서 식사를 하든 또는 거르든, 아침에는 차분하게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자. 손님이 오든 또는 가든, 종이 울리든, 아이들이 울든, 단호하게 하루를 보내도록 하자. 왜 우리가 무너져 내려 물결에 떠내려가야 하는가? 정오의 얕은 모래톱에 자리 잡은 점심이라는 이름의 저 무서운 격류와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자. 이 위험을 이겨내면 당신은 안전한 데로 돌아서게 된다. 나머지는 내려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144
학생들이 호메로스나 아이스킬로스를 그리스어로 읽더라도 사치나 무절제에 빠질 염려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들을 읽는 동안 거기에 나오는 영웅들을 어느 정도 본받으려고 노력할 것이고 또 아침 시간을 독서로 보낼 테니까 말이다. 영웅들을 그린 이런 책들은 비록 우리의 모국어로 인쇄된 것이지만, 타락한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마치 사어(죽은)처럼 잘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혜',와 '용기'와 '관용'과 같은 관념에도 우리의 일상 용법이 허용하는 것보다는 더 큰 의미를 부여해 가면서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의 뜻을 열심히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날 염가의 대량 출판이 자리를 잡고 그에 따라 많은 번역물이 나왔지만 영웅을 그린 옛 작가들에게 우리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접근시켜주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과거와 다름없이 외로워 보이며, 그들의 책들이 인쇄된 글자는 여전히 진귀하고 신기하게 보인다. 당신이 젊은 날의 소중한 시간을 바쳐 몇 마디나마 고전 어휘들을 공부하는 것은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이 어휘들은 거리의 천박함을 넘어서서 당신에게 영원한 암시와 자극을 줄 것이다. 농부가 자신이 주워들은 라틴어 몇 마디를 기억하고 되뇌어보는 것은 결코 쓸데없는 짓이 아닌 것이다.
때때로 사람들은 고전 연구가 더 현대적이고 더 실용적인 학문에게 자리를 내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탐구적인 학생은 그것이 어떤 언어로 쓰였고 얼마나 오래되었고 간에 항상 고전을 연구할 것이다. 인류의 가장 고귀한 생각을 기록한 것이 고전말고 또 무엇이겠는가? 고전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유일한 신탁(믿을신, 부탁할탁)이며, 그 안에는 가장 현대적인 질문에 대하여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의 신탁이나, 도도나에 있는 제우스 신의 신탁도 밝히지 못한 해답들이 들어 있다. 고전 연구를 그만두는 것은 자연이 낡았다고 해서 자연 연구를 그만두는 것이나 다름없다.
독서를 잘하는 것, 즉 참다운 책을 참다운 정신으로 읽는 것은 고귀한 '운동'이며, 오늘날의 풍조가 존중하는 어떤 운동보다도 독자에게 힘이 드는 운동이다. 그것은 운동선수들이 받는 것과 같은 훈련과, 거의 평생에 걸친 꾸준한 자세로 독서를 하려는 마음가짐을 요청한다. 책은 처음 쓰였을 때처럼 의도적으로 그리고 신중히 읽혀야 한다.

#150
위대한 시인들의 작품은 아직 인류에게 읽힌 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오직 위대한 시인들만이 읽을 수 있으므로, 만약 그 작품들이 읽혔다면 그것은 대중들이 별을 읽듯이, 다시 말해서 천문학적으로가 아니고 점성술적으로 읽혔을 것이다. 사람들은 장부를 기입하고 장사에서 속지 않기 위해서 셈을 배운 것처럼 하찮은 목적을 위해서 읽기를 배운다. 고귀한 지적 운동으로서의 독서에 대해서 그들은 거의 또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하지만 그것만이 진정한 의미의 독서인 것이다. 자장가를 듣듯이 심심풀이로 하는 독서는 우리의 지적 기능들을 잠재우는 독서이며 따라서 참다운 독서라고 할 수 없다. 발돋움하고 서듯이 하는 독서, 우리가 가장 또렷또렷하게 깨어 있는 시간들을 바치는 독서만이 참다운 독서인 것이다.

#152
티틀 톨 탄을 써서 유명해진 작가의 새로운 작품, 중세의 로맨스를 매월 분할 출간할 예정임! 선풍적인 인기! 혼잡하오니 한꺼번에 오지 마시기 바람. 사람들은 눈을 접시처럼 뜨고 원시적이고 긴장된 호기심을 가지고 이 소설들을 읽어 나가는데, 위장의 모래주머니는 조금도 피곤한 기색 없이 어떤 책이든지 잘도 소화시킨다. 마치 여섯 살짜리 꼬마가 금박 표지를 한 2센터 짜리 신데렐라 이야기를 열심히 읽어 나가듯이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런 책들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내가 보기엔 발음이나 엑센트나 강조에 조금도 발전이 없고, 이야기로부터 어떤 교훈을 끄집어내든가 아니면 집어넣든가 하는 기술도 전혀 늘지 않는다. 이런 독서 취향은 결과적으로 시력의 감퇴, 혈액 순환의 장애 그리고 지적 능력의 전반적인 위축 내지는 퇴보만을 가져온다. 그런데도 이런 종류의 '생강빵'은 진짜 말이나 옥수수로 만든 빵을 제치고 어느 집의 부엌에서나 매일 열심히 구워지고 있으며 시장성도 더 확실한 것이다.

#154
나는 우리 콩코드 땅이 배출한 인물들보다 더 현명한 사람들과 사귀기를 갈망한다. 비록 그들의 이름이 이곳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플라톤의 이름을 듣고도 언제까지 그의 저서를 읽지 않을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플라톤이 바로 우리 마을 사람인데도 내가 그를 한 번도 만나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며, 그가 바로 옆집 사람인데도 그의 말을 들어보지 못하고 그 말의 예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런데 실상은 어떠한가? 플라톤의 대화편은 그의 영원불멸한 지혜를 담은 책이며 바로 옆 선반에 놓여 있는데도 나는 그 책을 거의 들추지 않는다.
우리는 버릇이 없고 무식하며 천박한 삶을 살고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책을 전혀 읽지 못한 사람의 무식과, 어린애들과, 지능이 낮은 사람들을 위한 책만 읽는 사람들의 무식 사이에 그리 큰 차이를 두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194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지내는 것이 심신에 좋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사람들이라도 같이 있으면 곧 싫증이 나고 주의가 산만해진다. 나는 고독만큼 친해지기 쉬운 벗을 아직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대개 방 안에 홀로 있을 때 보다 밖에 나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닐 때 더 고독하다. 사색하는 사람이나 일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든지 항상 혼자이다. 고독은 한 사람과 그의 동료들 사이에 놓인 거리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버드 대학의 혼잡한 교실에서도 정말 공부에 몰두해 있는 학생은 사막의 수도승만큼이나 홀로인 것이다.

농부는 하루 종일 혼자 밭에서 김을 매거나 숲에서 나무를 베면서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일에 몰두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밤에 집에 돌아오면 여러 가지 생각이 나서 방 안에 가만히 혼자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하루 종일 혼자 있었던 것에 대해 스스로 보상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여 사람들을 만나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그러므로 농부는 학생이 밤과 낮의 대부분을 집에 있으면서 어떻게 권태와 우울증을 느끼지 않나 의아해 한다. 농부는 학생이 집에 있더라도 농부처럼 그 나름의 밭을 갈고 그 나름의 나무를 베고 있으며, 그런 다음에는 좀 더 집중된 형태이긴 하지만 농부와 똑같은 휴식과 사교를 찾는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195
대체로 사람들의 사교는 너무 값싸다. 너무 자주 만나기 때문에 각자 새로운 가치를 획득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 세끼 식사 때마다 만나서 우리 자신이라는 저 곰팡내 나는 치즈를 서로에게 맛보인다. 이렇게 자주 만나는 것이 견딜 수 없게 되어 서로 치고받는 싸움판이 벌어지지 않도록 우리는 예의범절이라는 일정한 규칙들을 협의해 놓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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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독방의무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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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몇 년 전 우연히 접한 책 몇 권 덕분에 독서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현재는 꾸준히 독서를 하고 있습니다.

책에서 얻은 좋은 지식이나 지혜, 정보 등을 만날 때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북바인더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북바인더에서는 책의 좋은 내용을 발췌하고 개인 의견을 덧붙여 여러분께 공유하는 것입니다.

천천히 읽어보시면 좋은 내용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럼 즐겁고 보람찬 시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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