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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2.20 오늘의 역사 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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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17.02.10 오늘의 역사 2월 10일
  6. 2017.02.09 오늘의 역사 2월 9일
  7. 2017.02.08 오늘의 역사 2월 8일


1897년 -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 옮긴지 1년 만에 덕수궁으로 돌아왔다.


아관파천 : 을미사변 이후 일본의 영향 아래에서 조직된 제4차 김홍집(金弘集)내각은 일세일원연호(一世一元年號), 태양력 사용, 군제개혁, 단발령의 실시 등 급진적인 개혁을 단행하였으나 명성황후의 시해와 단발령의 실시는 친일내각과 그 배후세력인 일본에 대한 국민의 감정을 극단적으로 자극하여 전국 각지에서 의병항쟁이 일어났다. 이범진(李範晉)·이완용(李完用) 등 친러파 세력은 친위대(親衛隊)가 의병을 진압하기 위해 지방으로 이동한 틈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세력만회와 신변에 불안을 느끼고 있던 고종의 희망에 따라 러시아 공사 베베르(Waeber)와 협의하여 보다 안전한 러시아 공관(공사관)으로 이동(파천)하였다.



1928년 - 도쿄 이중교에서 일왕에게 폭탄 투척한 김지섭 의사, 옥중 순국하다.


김지섭 : 본관 풍산(豊山). 자 위경(衛卿). 호 추강(秋岡). 경상북도 안동(安東) 출생이다. 상주보통학교 교원을 거쳐 금산지방법원 서기, 김응섭(金應燮)법률사무소 상주출장소원을 지냈다. 1919년 3·1운동 때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활약하다가 1920년 중국으로 망명,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였고, 상하이[上海]·베이징[北京]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1924년 제국의회에 참석하는 일본고관들을 저격하고자 도쿄[東京]에 잠입하였으나 제국의회가 무기한 연기되는 바람에 계획을 변경하여 일본 궁성(宮城)의 니주바시[二重橋]에 폭탄 3개를 던지고 현장에서 체포되어 이치가야[市谷] 형무소에서 복역 중 옥사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1947년 -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다.


인도 독립 : 델리의 총독관저에서 열린 장엄한 예식에서, 인도의 마지막 총독인 마운트배튼 경은 인도의 초대 지사로 취임하였다. 의회에서 정중한 연설을 마친 뒤 저녁 8시 30분, 유니언잭이 내려지고 인도 국기가 게양되었다. 조지 6세는 더 이상 황제가 아니었으며 인도 총독 역시 더 이상 총독이 아니었다. 불꽃놀이가 델리 하늘을 환하게 밝혔으며, 이튿날까지 파티가 계속되었다. 뉴스는 기억하는 한 최다 군중이 "기뻐서 날뛰었다"고 전했다. 영국은 이것이 1857년 동인도회사로부터 통치권을 넘겨받으면서 공식적으로 시작된 영국 통치의 성과라고 말했다. 영국을 몰아내는 데는 두 번의 세계대전과 인도 민족주의의 성장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영국이 철수 날짜를 못박았을 때 인도 정치계는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었다. 결국 인도가 두 개의 국가로 분리된 뒤에야 힌두교도가 주도하는 국민회의와 무슬림 연맹 사이의 교착 상태가 깨질 수 있었다. 신생 이슬람 국가 파키스탄에서는 유니언잭 대신 이슬람의 별이 박힌 파키스탄 국기가 게양되었다. 권력 이양의 위엄은 여러 면에서 수백만 명이 자신의 종교를 따라 국경 너머로 이주하면서 일어난 성난 주민들의 긴장과 폭동, 학살을 뒤에 감춘 겉치레에 불과했다. 이전까지 반(半) 독립국가였던 프린슬리 스테이츠(군주국)는 인도와 파키스탄 중 한쪽에 가담하기로 했다. 인도는 세계 최대의 민주 국가가 되었지만 파키스탄의 경우는 좀더 복잡했다. 결국 파키스탄 동부는 1971년 독립하여 방글라데시를 건국하게 된다.



1961년 - 3.15부정선거 관련자들에 대한 1차 공판이 열렸다


3.15부정선거 : 3월 15일 선거에서 대통령 이승만은 12년간 지속된 장기집권체제를 연장하고, 승계권을 가진 부통령에 이기붕(李起鵬)을 당선시키기 위하여 대규모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전국적으로 유령유권자 조작, 4할 사전투표, 입후보 등록의 폭력적 방해, 관권 총동원에 의한 유권자 협박, 야당인사의 살상, 투표권 강탈, 3~5인조 공개투표, 야당참관인 축출, 부정개표 등이 자행되었다. 그 결과 자유당 후보의 득표율이 95~99%에 이르렀으나 하향조정하여 이승만 963만 표(85%), 이기붕 833만 표(73%)로 발표하였다. 그러나 3월 15일 마산(현 창원시)에서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 시위진압 도중 경찰의 실탄발포로 최소한 8명이 사망하고, 72명이 총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어 4월 19일 대규모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결국 4월 26일 대통령 이승만이 하야성명을 발표함으로써 자유당 정권은 붕괴되었다.



1968년 - 재일동포 김희로 13명을 인질로 일본경찰과 대치하다.


김희로 사건 : 권희로(權禧老, 1928년 11월 20일 일본 시즈오카 현 ~ 2010년 3월 26일 대한민국 부산광역시)는 재일 한국인 2세, 기업가, 범죄자로의 일본 최장기수였으며 일본인 조직폭력배를 살해한 죄로 체포되어 24년간 복역하였다. 그는 1999년 대한민국에 돌아올 때까지 김희로(金嬉老)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따라서 김희로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일본 시즈오카 현 시미즈 출생이지만 그의 고향을 모친의 출생지인 부산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1999년 대한민국 귀국 이후 부산광역시와 서울특별시에 주로 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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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6일 


1945년 - 윤동주가 옥중에서 사망하다.



윤동주 : 동주(尹東柱, 1917년 12월 30일 ~ 1945년 2월 16일)는 한국의 독립운동가, 시인, 작가이다. 아명은 윤해환(尹海煥)이며 창씨개명이후의 이름은 히라누마 도슈(平沼東柱 )이다. 본관은 파평(坡平). 중국 만저우 지방 지린 성 연변 용정에서 출생하여 명동학교에서 수학하였고, 숭실중학교와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숭실중학교 때 처음 시를 발표하였고, 1939년 연희전문 2학년 재학 중 소년(少年) 지에 시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일본 유학 후 도시샤 대학 재학 중 , 1943년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福岡刑務所)에 투옥, 100여 편의 시를 남기고 27세의 나이에 옥중에서 요절하였다. 사인이 일본의 소금물 생체실험이라는 견해가 있고 그의 사후 일본군에 의한 마루타, 생체실험설이 제기되었으나 불확실하다. 사후에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되었다. 일제 강점기 후반의 양심적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았으며, 그의 시는 일제와 조선총독부에 대한 비판과 자아성찰 등을 소재로 하였다. 그의 친구이자 사촌인 송몽규 역시 독립운동에 가담하려다가 체포되어 일제의 생체 실험 대상자로 분류되어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1990년대 후반 이후 그의 창씨개명 '히라누마'가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본명 외에 윤동주(尹童柱), 윤주(尹柱)라는 필명도 사용하였다.


1959년 -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의 대통령에 취임하다.


카스트로 : 오늘날 쿠바의 국부(國父). 쿠바의 혁명가, 정치인, 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권으로부터 쿠바를 해방시킨 혁명가라는 평가와, 언론 탄압은 물론 정적과 반대파 숙청을 행한 독재자라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미국과의 오랜 대립 속에 반미적인 성향을 지닌 것으로 유명하며, 한 때 복지정책을 통해 쿠바인에게 인기를 얻기도 했으나 공산권의 붕괴로 인해 쿠바 역시 큰 타격을 입었고 쿠바 의료계의 현실이 알려진 것처럼 선진국 수준까진 아니기에 자국에서도 어느 정도의 비판이 있다. 하지만 바꿔말하면 북한과는 달리 미국의 봉쇄가 지속되고 소련의 지원도 끊긴 특별기간을 극복했다는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목소리도 높다. 쿠바 자국에서 뿐 아니라, 제3세계에 대한 협력과 지원으로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여전히 호의적인 평가가 우세하다.


1978년 - 첫 컴퓨터 전자게시판 시스템이 만들어지다 (시카고의 CBBS).



전자게시판 : BS는 Bulletin Board System의 약어로 전자게시판이라고도 하는데 PC(퍼스널컴퓨터)통신에서 불특정 다수의 PC통신망 가입자를 대상으로 메시지를 써 넣을 수가 있으며 또 다른 가입자의 메시지를 자유롭게 꺼내 볼 수도 있는 시스템을 말한다. BBS를 운용하는 기본적인 네트워크인 PC통신의 형태는 PC끼리 직접 통신하는 엔드 투 엔드(end to end)형태와 컴퓨터센터를 매개로 하여 통신하는 센터 투 엔드(center to end)형태로 크게 나뉘는데 BBS는 후자의 형태에서 센터의 파일상에 게시판을 마련, PC로부터의 정보를 회선을 경유해 액세스하는 시스템으로 게시판은 장르별로 가입자간의 정보교환미디어로 이용돼 이용자에 의한 정보의 선택, 검색이나 알리고자 하는 정보를 써넣기도 가능한 1대 다수의 PC통신이다. BBS는 PC통신 가입자가 어떤 테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는 알림이나 이러이러한 사실에 대해 알고싶다고 하는 메시지를 전자게시판에 써넣음으로써 그 전자게시판을 통해 불특정 다수의 회원에게 알리게 되며 마찬가지로 다른 회원이 써넣은 메시지도 자유롭게 볼 수 있는 것. 세계최초로 개인레벨의 네트워크를 만든 것은 1978년 미국 시카고에 살던 크리스찬센이란 사람에 의해서였고 지금은 BBS가 미국에는 3,000정도, 일본엔 1,000개 시스템 정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05년 - 지구 온난화의 규제 및 방지를 위한 국제협약인 교토 의정서가 발효되다.


교토의정서 : 교토 의정서(京都議定書, 영어: Kyoto Protocol, 문화어: 교또의정서)는 지구 온난화의 규제 및 방지를 위한 국제 협약인 기후변화협약의 수정안이다. 이 의정서를 인준한 국가는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여섯 종류의 온실 가스의 배출량을 감축하며 배출량을 줄이지 않는 국가에 대해서는 비관세 장벽을 적용하게 된다. 1997년 12월 11일 일본 교토 시 국립교토국제회관서 개최된 지구 온난화 방지 교토 회의(COP3) 제3차 당사국 총회에 채택되었으며 2005년 2월 16일 발효되었다. 정식 명칭은 기후 변화에 관한 국제 연합 규약의 교토 의정서(Kyoto Protocol to the 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다.


2009년 - 대한민국의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다.


김수환 추기경 : 김수환(金壽煥)은 대한민국의 천주교 성직자이자 사회운동가이다. 한국인 최초로 로마 가톨릭교회의 추기경에 서임되었다. 본관은 광산. 세례명은 스테파노이며 아호는 옹기이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군사 정권 당시 군사 독재정권 퇴진 운동과, 시민 활동을 하였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부터는 사회 운동과 방송 활동, 복지 사업, 언론 활동, 강연 활동 등을 하였다. 한국 가톨릭계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수십 년간 군부 정권의 독재에 저항하며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인권의 수호자로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신념과 공동선의 추구를 바탕으로 교회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신앙을 실천한 인물이었다. 로마교구의 '산 펠리체 다 칸탈리체 첸토첼레 성당' 명예주임사제직의 사제급 추기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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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5일



1564년 - 이탈리아의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태어나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 이탈리아의 천문학자·물리학자·수학자. 진자의 등시성 및 관성법칙 발견,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대한 지지 등의 업적을 남겼다. 지동설을 확립하려고 쓴 저서《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2대 세계체계에 관한 대화》는 교황청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었으며 이단행위로 재판 받았다.



1748년 - 영국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탄생하다.

제러미 벤담 : 영국 공리주의를 대표하는 사회사상가. 본래 법학자였는데, 정치 · 경제 · 교육 등 다방면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는 변호사가 되었지만 기존의 해석법학에 흥미를 잃고, 로크(Locke, J.)와 흄(Hume, D.)의 경험론철학의 연구에 몰두하였다. 프리스틀리(Priestley, J.)의 「정부론」(1968)을 읽고 이 책에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구절을 발견하였다. 그는 이에 대하여 '공사(公私)의 도덕에 관한 나의 주의가 확립된 것은 이 소책자의 이 구절에서였다'고 말하고 있다. 1776년 「정부론단편」을 익명으로 출판하고 그 후 1789년에는 「도덕 및 입법원리의 서론」을 공표하였다. 그는 이 저서에서 공리의 원리를 가지고 개인적 도덕행위 및 사회적 입법을 구명하고 있다. 벤덤에 있어서는 도덕과 법률은 일치하는 것이며, 양자의 기초원리는 공리주의, 말하자면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는 프랑스혁명이 무정부적 혼란을 반복하는 것을 보고 프랑스 혁명사상, 즉 혁명의 기초를 이루는 자연법사상에 반대하고 비판을 가하였다. 또한 그는 1808년 밀(Mill, J.)을 알게 되었으며, 벤덤의 사상은 밀에 의하여 한층 더 발전되었다.



1894년 - 고종 31년에 전라도 고부에서 농민들이 봉기하다.

고부 민란 : 1894년(고종 31) 1월 고부 군수 조병갑(趙秉甲)의 탐학에 격분한 고부의 동학접주 전봉준(全琫準)이 농민들을 규합하여 일으킨 농민 봉기. 당시 고부 군수의 수탈로 농민의 경제생활이 파탄 지경에 달하였다. 후일 전봉준이 술회한 공초(供草)에 의하면, 조병갑의 침학(侵虐)의 세목은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민보(民洑)를 축조한다는 명목 아래 백성의 노동력을 함부로 징발하였을 뿐 아니라, 보를 이용하는 민간에 대하여 상답 1두락에 2두세를, 하답은 1두세를 거두어 도합 700여 석을 착복하였다. 그리고 황무지를 백성들이 개간하면 문권을 주어 징세하지 않는다고 약속한 뒤 추수할 때 수세하였다. 둘째 부유한 백성들로부터 2만냥을 강제로 빼앗았고, 셋째 태인 군수를 지낸 아버지의 비각을 건조한다는 명목으로 백성들로부터 1,000여 냥을 거두었으며, 넷째 대동미 16두씩을 좋은 쌀로 거둬들인 후 나쁜 쌀로 바꾸어 상납하고 그 이익을 착복하였다. 그밖에 백성들에게 불효·불목·음행·잡기 등의 죄로 무고하여 재물을 빼앗았다. 이와 같이, 당시 고부군 일대에는 누적된 봉건적 모순이 집중적으로 자행되어 농민의 불만이 축적, 고조된 상황에서 전봉준의 지휘로 봉기하게 되었다.



1988년 -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사망하다.

리처드 파인만 :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양자전기역학의 재규격화이론을 완성한 연구 업적으로 1965년 노벨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하였다. 어린 시절 라디오를 수리하거나 금고와 자물쇠를 여는 일이 취미였으며 드러머, 화가로서의 재능뿐만 아니라 유머와 재치도 출중하였다. 1939년 MIT를 졸업하고 프린스턴대학교에서 공부한 후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원자폭탄 개발계획인 '맨하튼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전쟁 후인 1945년 코넬대학교에서 이론물리학 조교수로, 1950년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코넬대학교 시절부터 양자전기역학(量子電氣力學)을 연구하였으며 이후 재규격화이론을 완성하였다. 여기서 사용된 파인만 다이어그램(Feynman diagram)은 그가 직접 고안한 것으로 이론물리학에 널리 이용되었다. 1950년 이후에는 액체 헬륨의 이론을 연구하였다. 1954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상을 수상하였으며 1965년 양자 전기역학의 재규격화이론 연구의 업적으로 J.S.슈윙거, 도모나가 신이치로[朝永振一郞]와 함께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20세기에 거시적 세계를 다루는 물리학이 아인슈타인으로 대표된다면 미시적 세계를 다루는 물리학은 파인만으로 대표된다. 파인만은 아인슈타인과 더불어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로 인정받고 있으며 형식과 권위를 거부하고 창조적이고 주체적인 사고를 유지했던 과학자이다. 1988년 암으로 투병하던 중 6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2003년 -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 운동이 세계 각지에서 열리다.

이라크 전쟁 : 이라크 전쟁 또는 제2차 걸프 전쟁 또는 이라크 자유 작전(영어: Operation lraq Freedom, 오퍼레이션 이라크 프리덤)은 2003년 3월 20일 미군의 이라크 침공으로 시작되어, 2011년 12월 15일 종전되었다. 그리고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하자마자 이라크는 내란에 휩싸였다. 징병제로 100여만 명이 넘는 이라크군은 수적 우세임에도 불구하고 미군에게 일방적으로 패배했으며 패배 이유 중에서는 이라크병사들의 군기가 엉망인 것이 큰 이유였다. 2006년 결국 후세인의 두 아들인 우다이 후세인과 쿠사이 후세인이 열화우라늄탄에 맞아 숨을 거두고 이후 후세인은 미군의 체포로 인하여 종전되었다. 미군은 후세인 독재세력의 지지기반을 와해시킴으로써 그동안 유지되던 이라크 내 치안이 와해되었으며 이로 인해 보복살해 등 종파분쟁이 발생하고 치안부재로 인한 무장세력의 형성과 이들의 저항으로 미군 수천 명이 전사하는 결과를 낳았다. 뒤늦게 부족한 지상군을 증원하고 이라크 경찰과 군을 재건하여 미군 전사자 수가 크게 줄고 안정을 되찾아 갔으나 미군이 철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7년이 지난 2010년 8월 20일. 모든 전투병력을 철수시키기 시작, 2011년 12월 15일 미국에서 공식으로 종전을 선언하였으며 같은해 12월 18일 미군은 이라크에서 완전히 철수하였다.



2011년 - 아랍의 봄의 일부인 리비아 내전이 일어나다.

리비아 내전 : 2011년 2월 15일 카다피 정권에 반대하며 리비아 사람들에 대한 구호 운동을 주도하던 인권 운동가가 체포되었고, 벵가지 지역을 중심으로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가 발생하였다. 당시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과 함께 아랍국가들은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운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고, 인권 운동가의 체포는 카다피 정권에 반대하는 민중 봉기가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카다피는 2월 20일부터 벵가지 지역에 무력으로 시민군을 진압하였으며, 서남아프리카 지역에서 용병을 채용하고 전투기를 동원하는 등 정권에 반대하는 민간인에 대해 무차별적인 탄압을 감행하였다. 민간인 살해와 인권유린이 지속되자, 2월 26일 국제연합은 카다피 정권에 대한 제재 조치를 결의하고, 국제사회가 공조하여 카다피 정권에 대한 대응 계획을 수립하였다. 3월 3일에 국제형사재판소에서 독재 기간동안 저지른 반인류, 범죄에 대한 조사를 착수하면서 카다피의 퇴진에 압박을 가하였다. 국제연합의 제재와 합의에 따라 3월 19일 미국과 유럽 연합군이 리비아 본토에 대한 공격을 개시·참전하였다. 연합군의 합류와 함께 단순 민중 봉기가 아닌 정부군과 시민군의 내전 양샹을 띄게 되었다. 정부군은 카다피 정권의 지지층과 서남아프리카 용병이 주축을 이루었고, 시민군은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연합군으로 구성되었다. 같은 해 8월 19일, 시민군은 트리폴리 북부 지역을 제외한 리비아 영토 대부분을 장악하고, 10월 20일 카다피의 고향 시르테를 공격하였다. 시르테에 은신하고 있던 카다피는 발각되어 사살되었고, 이후 정부군은 와해되었다. 10월 27일 국제연합안전보장이사회는 리비아 지역에서의 철수를 선언하였다. 2012년 7월 7일 장교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과도국가위원회를 중심으로 의회 선거를 실시하여 새로운 총리를 선출하고, 헌법 초안을 작성하였다. 8월 공식 국가가 수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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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8년 - 스페인이 포르투칼의 독립을 승인함.

포르투칼의 독립 : 1640년에 국가 복원 혁명이 일어나 포르투갈은 브라간사 공작 주앙을 포르투갈의 주앙 4세로 추대하며 독립을 선언한다. 그러나 에스파냐는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포르투갈 독립 전쟁이 일어난다.


1735년 - 조선 영조대왕의 세자 사도세자가 태어남.

사도 세자 : 장조(莊祖, 1735년 2월 13일(음력 1월 21일) ~ 1762년 7월 12일(음력 윤 5월 21일))는 조선의 왕세자이자 추존왕이다. 영조의 둘째 서자로, 효장세자의 이복 동생이며 정조의 생부이다. 흔히 사도세자(思悼世子) 또는 장헌세자(莊獻世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성은 이(李), 이름은 선(愃),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윤관(允寬). 호는 의재(毅齋)이다.


1951년 - 지평리 전투 시작함

지평리 전투 : 지평리 전투는 1951년 2월 13일부터 2월 16일까지 경기도 양평군 지평리 일대에서 원형 방어진지를 구축한 미국 2 보병사단 23연대전투단(Regiment Combat Team,RCT)과 23RCT에 배속된 프랑스 대대가 중국 인민해방군 39군과 3일간 벌인 격전이었다. 3일 동안 완전히 포위된 미군 23RCT와 프랑스 대대는 포위 3일째인 2월 16일에 미국 1 기병사단 5 기병연대 3대대를 주축으로 편성된 크롬베즈 특별임무부대에 의해 구출되었고, 중국군은 큰 피해를 입고 철수했다.


2004년 - 국회에서 이라크 추가 파병 동의안이 가결되다.

이라크 파병 : 한국의 경우 초기 미국의 파병요구에 보수세력을 중심으로 한 찬성론이 있었다. 물론 진보세력들은 반대. 반대측에서는 불필요한 전비의 사용은 물론, 이라크전이 명분없는 전쟁이므로 참전하였다가 주변 아랍국가들과의 관계가 악화될 것이며, 자칫 테러의 위협성을 높인다는 이유로 반대하였다. 반면 찬성측에서는 미국이 한국과는 각별한 관계의 최우선 우방국이며, 이라크에 대한 민주주의 전파 및 아랍지역의 평화라는 깃발 아래에 유럽의 국가들 역시 참전의사를 밝히는데 한국만 외따로 빠진다는 것은 곤란한 일이며, 이후 미국과의 외교가 난맥을 겪을 수 있다는 점에서 찬성을 주장했다 나중에 무조건 파병반대가 아닌 비전투병, 대민지원 병력에 대해선 상당히 공감이야 하긴 했지만. 기왕 보내는 거 전투병 파병을 보내야지 전투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있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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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2월 10일


1258년 - 몽골족(Mongols)이 바그다드(Baghdad)를 점령

몽골족 정복전쟁 : 몽골의 정복전쟁은 13세기 내내 계속되어 광대한 몽골 제국을 형성했다. 1300년경이 되면 몽골 제국의 영역은 아시아의 대부분과 동유럽에 이르렀다. 역사학자들은 몽골의 침략과 약탈을 인간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전쟁 중 하나였던 것으로 여기고 있다. 또한 몽골인들이 팽창하면서 선페스트가 그들을 따라 아시아와 유럽 전역으로 퍼졌고, 이는 흑사병이라는 대규모 인명손실로 이어진다. 몽골 제국은 중앙아시아 및 서아시아에 일련의 정복과 침공을 행하면서 세력을 불렸고, 1240년대에 동유럽에 도달했다. 몽골 제국은 1260년경 제국이 분할될 때까지 러시아계 국가들을 지속적으로 약탈했다. 또한 14세기가 되면 중국 전역을 영향권 아래 두게 되어 원 황조가 성립되었다. 한편 페르시아 지방에서는 15세기를 지나면서 티무르 제국이 몽골 제국의 후계자를 자처했다. 인도는 몽골의 침략을 받지 않았지만 19세기에 티무르 제국의 후예인 무굴 제국에게 정복된다.



1837년 - 러시아 소설가 알렉산드르 푸시킨 사망

알렉산드르 푸시킨 :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Александр Сергеевич Пушкин)은 러시아의 위대한 시인이자 소설가이다. 외조부는 표트르 대제를 섬긴 아비시니아(에티오피아) 흑인 귀족이었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황금기를 맨 처음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푸시킨의 시를 꼽으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Если жизнь тебя обманет)'일 것이다.



1948년 - 백범 김구가 <삼천만 동포에게 읍소함>이란 제목으로 남한 단독정부 수립반대 성명 발표하다.

삼천만 동포에게 읍소함 : 1948년 2월 10일, 당시 이승만과 한국민주당 세력 등에 의해 단독 정부 수립의 가능성이 높아지자 이에 저항하는 의미로 남북회담을 제안하며 김구가 발표한 글이다.



1951년 - 거창양민학살사건 발생.

거창양민학살사건 : 거창 민간인 학살 사건(居昌良民虐殺事件)은 1951년 2월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에서 한국군에 의해 일어난 민간인 대량학살 사건이다. 공비 소탕 명목으로 500여명을 박산(朴山)에서 총살하였다. 그 후 국회조사단이 파견되었으나 경남지구 계엄민사부장 김종원(金宗元) 대령은 국군 1개 소대로 하여금 공비를 가장, 위협 총격을 가함으로써 사건을 은폐하려 하였다. 국회 조사 결과 사건의 전모가 밝혀져 내무·법무·국방의 3부 장관이 사임하였으며, 김종원·오익경·한동석·이종배 등 사건 주모자들이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얼마되지 않아 모두 특사로 석방되었다.



1995년 - 황우석 연구 팀이 대한민국 최초로 복제송아지 생산에 성공하다.

황우석 : 1999년에 체세포 복제 방식을 통하여 세계에서 5번째로 복제젖소를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복제된 젖소의 이름은 '영롱이'로 명명되었으며 영롱이 복제에 대한 자료는 1999년 8월 15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Transgenic Animals in Research Conference'(형질전환 동물에 대한 연구학술대회)에서 포스터 발표를 하였다. 포스터 발표자료의 내용은 세계최대 학술 출판사인 'Springer'에서 격월로 발간되는 'Transgenic Research' 라는 학술지에 실려있다. 하지만, 2005년 12월 방송보도를 통해 논문조작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서울대에서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제기된 의혹에 대해 조사에 착수 하였다. 2006년 1월 10일 서울대 조사위는 최종보고서를 통해 2004년과 2005년 《사이언스》에 각각 발표한 인간 체세포 복제 배아 줄기세포 배양이 허위라고 발표한다.



2008년 - 숭례문 2층에 방화가 일어나다.숭례문 방화 : 숭례문 방화 사건(崇禮門放火事件)은 2008년 2월 10일부터 2월 11일에 걸쳐 서울의 숭례문이 방화로 인해 전소된 사건이다. 방화범은 채종기(당시 69세, 경북 칠곡 출신)로 밝혀져 구속 수감되었다. 화재는 2008년 2월 10일 20시 40분 전후에 발생하여 다음날인 2008년 2월 11일 0시 40분경 숭례문의 누각 2층 지붕이 붕괴하였고 이어 1층에도 불이 붙어 화재 5시간 만인 1시 54분 석축을 제외한 건물이 모두 붕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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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9일


1881년 - 고종 18년, 신사유람단을 임명하다

신사 유람단 : 조사 시찰단(朝士視察團)은 1881년(고종 18년) 김홍집의 주장에 따라 수신사에 이어 일본 제국에 파견되었던 집단이다. 과거에는 신사 유람단(紳士遊覽團)이라고 지칭하였으나 한국사 용어 수정안에 따라 조사 시찰단으로 바꾸어 부른다. 신사 유람단이라는 명칭은 당시 조선 내에서 외래 문물 수용에 부정적인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에 이를 숨기기 위하여 사용된 명칭이다.



1881년 -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세상을 떠남.

도스토예프스키 : 20세기의 실존주의자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가 중 하나로 러시아 문학의 최고 거장 중 한명. 인지도는 레프 톨스토이와 함께 최고봉으로 인정 받음. 20세기 학계를 뒤흔든 전 세계급 철학자, 심리학자, 소설가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작가가 작품에서 그려낸 캐릭터와 세계는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독보적인 묘사로 큰 명성을 얻게 하였다.


1898년 - 고종 35년, 독립협회가 종로에서 만민공동회를 개최하다.

만민 공동회 :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 또는 관민공동회(官民共同會)는 조선말, 대한제국의 대토론회, 시민운동이자 시민사회단체로 독립협회에서 처음 주관하였다가 1898년 4월을 기점으로 독립협회의 영향력에서 독자적인 민중대회, 단체로 성장했다. 1897년(광무 1년) 초 독립협회의 서재필, 윤치호, 이상재 등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다. 만민공동회는 독립협회 주최하에 민중대회로 처음 개최되었으며, 한성부의 시민, 소상인, 일부 지식인층이 참여했다. 이후 1897년 10월 박정양을 비롯한 정부의 개혁적 관료들과 독립협회가 함께 주관하면서 범국민적인 대회, 단체로 성장했다. 정부 측의 박정양, 이상재, 독립협회 측의 서재필, 윤치호 등이 이를 지도하였다. 만민공동회는 처음에는 사교 모임 형태였으나 연설과 강연, 웅변, 조정에 대한 민중의 건의사항 등을 채택하고 공개적으로 결정하는 모임으로 확대되고, 전국 각지에 지부를 두었다.



1950년 - 미국의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이 국무부에 수백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고 연설함으로써 매카시즘이 시작되다.

매카시즘 : 매카시즘(영어: McCarthyism)은 1950년부터 1954년까지 미국을 휩쓴 공산주의자 색출 열풍을 말한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서는 "1950년부터 1954년 사이에 일어난, 공산주의 혐의자들에 반대하는 떠들석한 반대 캠페인으로, 대부분의 경우 공산주의자와 관련이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블랙리스트에 오르거나 직업을 잃었다" 고 정의하고 있다.


1990년 - 민주정의당, 신민주공화당, 통일민주당의 주요 3당이 통합하여 민주자유당을 창당하다.

3당통합 : 1990년 1월 22일 발표되어, 그해 2월에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 야당인 통일민주당과 신민주공화당이 통합한 사건. 여기서 민주자유당이 태어난다. 이때 만들어진 보수 정당의 역사는 당내 권력 구도의 변화 등에 따라 이후 몇 번 명칭을 변경하지만, 큰 틀에선 기조를 유지하며 오늘날까지 이어져왔다. 다만 2017년 꽤 대규모의 분당사태가 일어나며 자유한국당, 바른정당으로 당이 쪼개졌다. 3당 합당 결과, 13대 총선을 통해 만들어진 여소야대 정국은 순식간에 여대야소로 뒤바뀌었고, 평화민주당이 유일한 원내 야당으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호남 VS PK VS TK VS 충청도의 4자 구도로 이어져 왔던 국내의 지역대결 구도가 3당 합당 후에는 호남 VS 非호남으로 단순화되어 호남이 본격적으로 고립되고 만다.


2000년 - 용산 미군부대 한강에 포름알데히드 무단 방류. 영화 ‘괴물’의 첫 장면은 ‘2000년 2월 9일’이라는 자막이 있다.

포름알데히드 방류 사건 : 주한미군 한강 독극물 무단 방류 사건은 2000년 2월 9일 용산 미8군 기지 영안실에서 군무원이 독성을 가진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를 무단으로 한강에 방류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맥팔랜드에 대한 처벌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대한민국 사법부에 대한 무시 행위로 대한민국 국민들의 반미감정을 고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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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9년 - 고려 충숙왕 16년, 문익점 태어남.


문익점 : 사신으로 원 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붓두껍에 목화씨를 숨겨와 재배에 성공. 그 뒤 우리 손으로 만든 무명옷을 입을 수 있게 됨



1452년 - 조선 문종 2년, 황희 정승 세상 떠남


황희 : 현명함과 냉철한 판단력으로 세종대왕의 가장 신임 받는 재상의 한사람으로서 세종대왕 치세기간 중 18년간 영의정에 재임하였다.



1904년 - 일본이 뤼순 항 인근에서 러시아 배에 대한 어뢰 공격을 하여 러일 전쟁(사진)이 시작되다.


러일 전쟁 : 1905년 가을까지 계속된 전쟁으로 러시아 제국과 일본 제국이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쟁취하려는 무력 충돌이었다. 러일 전쟁의 주요 무대는 만주 남부, 특히 요동 반도와 한반도 근해였다.



1919년 - 일본 도쿄에서 조선인 유학생 600명이 2.8 독립 선언을 하다.


2.8 독립 선언 : 2․8독립선언은 항일 학생독립운동의 최고봉으로 재일 한인유학생들이 임시로 결성한『조선청년독립단』명의로 최팔용, 송계백, 김도연, 김상덕 선생 등 11명의 대표위원이 서명하고, 재일 한인유학생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919년 2월 8일 동경 한복판에서 조국독립을 세계만방에 선포한 사건



1931년 - 미국 영화배우 제임스 딘 태어남


제임스 딘 : 풀네임은 제임스 바이런 딘(James Byron Dean)으로, 미국에서 전설로 회자되는 영화배우이자, 청소년들의 반항의 상징. "원조 반항아" 혹은 "원조 오빠"로 불리기도 한다. 그 전까지 영화배우가 여자들에게 인기를 누렸던 것은 사실이지만, 제임스 딘은 최초로 여자들 및 남자들에게 모두 인기를 누린 영화배우였었다. 연기 능력 또한 인정 받아서, 역사 최초로 사후 아카데미 오스카 상 후보에 오른 연기자가 되었다.



1944년 - 일제 전국에서 강제징용 실시


강제징용 :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전쟁 체제에서 인력 확보를 위해 많은 조선인을 강제로 동원하였다. 1938년 4월 1일 국가총동원법을 공포하고 5월 5일부터 조선에서 이를 실시하였다. 일본은 또한 1939년 국가총동원법에 기초하여 국민징용령을 제정하였으며, 한국인의 반발을 우려하여 지원형식의 노동력 징발을 추진하였다. 이외에 학교졸업자사용제한령, 종업자고입제한령, 종업자이동방지령 등을 만들어 노동자들이 마음대로 직업을 선택하거나 바꾸지 못하도록 하였다. 1941년 12월 6일에는 노무조정령을 제정하였는데, 이 법령은 일본이 필요한 노무를 확보하고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국가의 직접지배시책을 시행하여 징용제도로서 전쟁 수행에 필요한 노동력의 부족을 보충하였다. 이러한 강제 동원을 위해 마을 단위까지 총동원연맹을 만들었는데, 이 조직의 조선 연맹의 총재는 조선총독이었다. 1943년 당시 조선의 가구수는 487만 8,901호였고 이 총동원연맹에 소속된 사람은 457만 9,162명이었다. 이 조직을 통해 물자와 인적자원을 강제로 통제, 동원하였다. 1942년 일제는 근로보국대(勤勞報國隊)를 창설하여 한국인 강제 동원의 초석을 다졌고, 1944년에는 국민징용령을 한국인에게도 확대 적용하여 강제적 징용을 실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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