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 -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 옮긴지 1년 만에 덕수궁으로 돌아왔다.
아관파천 : 을미사변 이후 일본의 영향 아래에서 조직된 제4차 김홍집(金弘集)내각은 일세일원연호(一世一元年號), 태양력 사용, 군제개혁, 단발령의 실시 등 급진적인 개혁을 단행하였으나 명성황후의 시해와 단발령의 실시는 친일내각과 그 배후세력인 일본에 대한 국민의 감정을 극단적으로 자극하여 전국 각지에서 의병항쟁이 일어났다. 이범진(李範晉)·이완용(李完用) 등 친러파 세력은 친위대(親衛隊)가 의병을 진압하기 위해 지방으로 이동한 틈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세력만회와 신변에 불안을 느끼고 있던 고종의 희망에 따라 러시아 공사 베베르(Waeber)와 협의하여 보다 안전한 러시아 공관(공사관)으로 이동(파천)하였다.
1928년 - 도쿄 이중교에서 일왕에게 폭탄 투척한 김지섭 의사, 옥중 순국하다.
김지섭 : 본관 풍산(豊山). 자 위경(衛卿). 호 추강(秋岡). 경상북도 안동(安東) 출생이다. 상주보통학교 교원을 거쳐 금산지방법원 서기, 김응섭(金應燮)법률사무소 상주출장소원을 지냈다. 1919년 3·1운동 때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활약하다가 1920년 중국으로 망명,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였고, 상하이[上海]·베이징[北京]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1924년 제국의회에 참석하는 일본고관들을 저격하고자 도쿄[東京]에 잠입하였으나 제국의회가 무기한 연기되는 바람에 계획을 변경하여 일본 궁성(宮城)의 니주바시[二重橋]에 폭탄 3개를 던지고 현장에서 체포되어 이치가야[市谷] 형무소에서 복역 중 옥사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1947년 -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다.
인도 독립 : 델리의 총독관저에서 열린 장엄한 예식에서, 인도의 마지막 총독인 마운트배튼 경은 인도의 초대 지사로 취임하였다. 의회에서 정중한 연설을 마친 뒤 저녁 8시 30분, 유니언잭이 내려지고 인도 국기가 게양되었다. 조지 6세는 더 이상 황제가 아니었으며 인도 총독 역시 더 이상 총독이 아니었다. 불꽃놀이가 델리 하늘을 환하게 밝혔으며, 이튿날까지 파티가 계속되었다. 뉴스는 기억하는 한 최다 군중이 "기뻐서 날뛰었다"고 전했다. 영국은 이것이 1857년 동인도회사로부터 통치권을 넘겨받으면서 공식적으로 시작된 영국 통치의 성과라고 말했다. 영국을 몰아내는 데는 두 번의 세계대전과 인도 민족주의의 성장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영국이 철수 날짜를 못박았을 때 인도 정치계는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었다. 결국 인도가 두 개의 국가로 분리된 뒤에야 힌두교도가 주도하는 국민회의와 무슬림 연맹 사이의 교착 상태가 깨질 수 있었다. 신생 이슬람 국가 파키스탄에서는 유니언잭 대신 이슬람의 별이 박힌 파키스탄 국기가 게양되었다. 권력 이양의 위엄은 여러 면에서 수백만 명이 자신의 종교를 따라 국경 너머로 이주하면서 일어난 성난 주민들의 긴장과 폭동, 학살을 뒤에 감춘 겉치레에 불과했다. 이전까지 반(半) 독립국가였던 프린슬리 스테이츠(군주국)는 인도와 파키스탄 중 한쪽에 가담하기로 했다. 인도는 세계 최대의 민주 국가가 되었지만 파키스탄의 경우는 좀더 복잡했다. 결국 파키스탄 동부는 1971년 독립하여 방글라데시를 건국하게 된다.
1961년 - 3.15부정선거 관련자들에 대한 1차 공판이 열렸다
3.15부정선거 : 3월 15일 선거에서 대통령 이승만은 12년간 지속된 장기집권체제를 연장하고, 승계권을 가진 부통령에 이기붕(李起鵬)을 당선시키기 위하여 대규모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전국적으로 유령유권자 조작, 4할 사전투표, 입후보 등록의 폭력적 방해, 관권 총동원에 의한 유권자 협박, 야당인사의 살상, 투표권 강탈, 3~5인조 공개투표, 야당참관인 축출, 부정개표 등이 자행되었다. 그 결과 자유당 후보의 득표율이 95~99%에 이르렀으나 하향조정하여 이승만 963만 표(85%), 이기붕 833만 표(73%)로 발표하였다. 그러나 3월 15일 마산(현 창원시)에서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 시위진압 도중 경찰의 실탄발포로 최소한 8명이 사망하고, 72명이 총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어 4월 19일 대규모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결국 4월 26일 대통령 이승만이 하야성명을 발표함으로써 자유당 정권은 붕괴되었다.
1968년 - 재일동포 김희로 13명을 인질로 일본경찰과 대치하다.
김희로 사건 : 권희로(權禧老, 1928년 11월 20일 일본 시즈오카 현 ~ 2010년 3월 26일 대한민국 부산광역시)는 재일 한국인 2세, 기업가, 범죄자로의 일본 최장기수였으며 일본인 조직폭력배를 살해한 죄로 체포되어 24년간 복역하였다. 그는 1999년 대한민국에 돌아올 때까지 김희로(金嬉老)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따라서 김희로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일본 시즈오카 현 시미즈 출생이지만 그의 고향을 모친의 출생지인 부산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1999년 대한민국 귀국 이후 부산광역시와 서울특별시에 주로 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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