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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번째 이야기 –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촛불의 승리 그리고 진보와 보수)

 줄거리 : 쥐가 고양이에게 자주 잡히자 견디다 못한 쥐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논의하였다. 쥐들은 서로 지혜를 짜내어 고양이가 오는 것을 미리 알아내는 방법을 궁리하였으나, 크게 신통한 의견은 없었다. 그때 조그만 새앙쥐 한 마리가 좋은 생각이 있다면서 나섰다. 그 묘안은 고양이 목에다 방울을 달아 놓으면 고양이가 움직일 때마다 방울 소리가 날 것이므로, 자기들이 미리 피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쥐들은 모두 좋은 생각이라고 감탄하고 기뻐하였다. 그때 한 구석에 앉아 있던 늙은 쥐가 “누가 고양이에게 가서 그 목에다 방울을 달 것인가?” 라고 물었다. 그러나 방울을 달겠다고 나서는 쥐는 없었다.

 

쥐(국민)들은 지금까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기 위해 대표(국회의원)를 선출했다. 하지만 대표들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결국 쥐들은 결정했다. ‘방울’을 다 함께 직접 달자고. 그것이 백만 촛불 집회다. 국민들은 함께 뭉쳐 행동할 때 비로소 바꿀 수 있다는 큰 경험을 했고,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국민의 대리인에 불과함을 다시 한 번 깨닫는 큰 교훈을 얻었다. 하지만 매번 국민들이 직접 방울을 달러 다닐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방울을 달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는 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가 더 중요한 시기이다. 정치구조는 재편될 것이고 또 다른 정치 권력 다툼이 있을 것이다. 이 다툼을 어떻게 건설적인 다툼으로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며, 그러기 위해 바로 진보-보수 체계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이하에서는 진보와 보수의 차이에 대한 대략적인 내용을 설명하고 이를 토대로 향후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위한 자세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진보와 보수의 논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좌파와 우파의 차이에 대해 알아야 한다. 좌파와 우파는 프랑스 대혁명 때 열렸던 국민의회에서 유래하는데 왼쪽에는 왕정을 무너뜨리고 프랑스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공화파가 자리를 잡았고, 오른쪽에는 왕정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왕당파가 앉았다. 루이 16세가 처형된 후 열렸던 국민공회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서민들을 대신해 급진적인 변화를 주장하는 ‘자코뱅’이 좌측에 앉았고, 부자 계층을 대표하며 점진적인 변화를 꾀하는 ‘지롱드’가 우측에 자리를 잡았다. 대체적으로 좌파는 급진개혁, 사회주의, 농민과 노동자, 빈민 등을 대변하고, 우파는 온건개혁, 자유주의, 자본주의, 상공업자, 부자 등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좌파와 우파는 정치성향을 의미하며 진보와 보수는 이런 정치성향을 실천하는 행동양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진보는 현재 체제를 바꾸고 개혁해 나가자는 의미기에 좌파와 거의 뜻을 같이하고, 보수는 현재 체제를 지키자는 의미기에 우파와 뜻을 같이한다. 개념적으로 많이 혼란스러울 수 있는데 사실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는 서로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부르주아적 자본주의 개혁이 좌파의 주장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현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에서 대체적으로 진보는 좌파, 보수는 우파로 정의되므로 이하에서는 진보는 좌파를 보수는 우파를 지칭하는 것으로 한다.


 먼저 진보는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진보는 미래를 중시하고 이상주의적 관점을 지향한다. 좌파는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고, 윤리 중심(관계적 측면)의 사회를 추구한다. 범죄자와 노숙자의 원인을 사회와 경제구조에 찾으며 진보에게 자유란 권력남용이나 불평등에서의 자유를 의미하고 평등이란 모두가 같아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후자를 조금 더 중시한다. 진보는 평등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를 추구하며 간혹 단체를 만들더라도 집단이나 조직 보다는, ‘연대’라는 개념을 쓴다. ‘수평적 연결’이라는 인식기반을 가지기 때문이다. 진보는 시장 경제 체제의 문제점을 극복을 위해 국가가 시장에 간섭하고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럼으로써 불평등을 없애거나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국가가 시장에 개입해 부를 골고루 분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보수는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보수는 과거를 중시하고 적자생존 등의 관점을 지향한다. 보수는 ‘지금 이대로가 좋다’는 믿음을 지니고 있으며 도덕 중심(내적 측면)의 사회를 추구한다. 범죄자와 노숙자의 원인을 개인의 책임에서 찾으며 보수에게 자유란 국가에 대한 개인의 행동 범위를 의미하며 평등이란 성공할 수 있는 기회의 균등을 의미하고 전자를 조금 더 중시한다. 보수는 계급을 기반으로 한 개인주의를 추구하기에 위계질서가 있는 조직을 구성하며 사회전체를 공동체로 보지 않는다. 보수는 시장 원리를 신봉하며 정부의 간섭을 배제하고 자유롭게 경제 활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정부는 개인이 부를 축적하도록 자유롭게 내버려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수는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이 자연스러운 것이며 오히려 이로 인해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러한 사고 양극단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해방 후 남쪽은 우파, 북쪽은 좌파로 이념적으로 나뉘게 되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6·25 전쟁을 겪고 사람들에게 ‘좌파’는 곧 북한을 나타내는 말이 되었다. 그래서 과거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은 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북한을 염두에 두고 정부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사람들을 ‘좌파’,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탄압했다. 이를 거꾸로 보아 진보 진영에서는 친일파, 독재 및 재벌 중심을 ‘우파’, ‘수구’라는 이름으로 공격하게 되었고 결국 한국에서는 좌파나 우파보다는 진보와 보수라는 개념을 주로 사용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수’ 하면 흔히 반공 주의, 재벌 중심의 시장 경제 질서 인정, 강력한 대통령의 통치 체제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을 말한다. 보수는 자신들이 한국 경제를 세계 수준으로 일으킨 주역들이라고 평가한다. 반대로 진보는 남한과 북한의 화해, 복지 및 민주화 확대 등으로 사회를 변혁하려는 사람들을 말하며 자신들이 과거 권위적주의적 정치 체제를 뒤엎고 민주화를 이끌어낸 주역들이라고 평가한다. 우리나라는 평소 비율이 진보 25 : 중도 40 : 보수 35 정도이고, 선거 때가 되면 진보 35 : 중도 20 : 보수 45 정도의 비율을 보이고 있다. 물론 지금의 시국에서는 또 다를 것이다.

 


일반적으로 진보는 보수에게 ‘이기적’이라고 비난하고, 보수는 진보에게 ‘위선적’이라 비난한다. 보수가 생각하는 ‘우리’는 가족, 학교, 고향 그리고 크게는 국가까지고, 진보의 ‘우리’는 그것보다 더 크다. 그렇기에 보수는 종종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도덕적 비난을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자신은 가족과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보 또한 자신의 순수함을 오도하는 행위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있어 정의란 옳고 그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 진영의 선거 현수막을 잘 보면 슬로건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다. 대체로 보수 진영의 현수막은 공약이 구체적이다. 우리 지역에 얼마를 가져다주고 일자리를 몇 개 만든다는 식이다. 진보는 그것보다 좀 더 추상적이다. 경제 민주화, 부패 척결 등의 식이다. 이렇기에 나이가 많은 유권자의 경우 자연스럽게 더 이해가 잘 가고 와 닿을 수 있는 보수를 선택하는 경향이 강한 것이다. 단지 박정희 향수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평등을 중시하는 진보는 복지효과가 경제를 살린다고 생각하고 자유를 중시하는 보수는 낙수효과가 경제를 살린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보면 오히려 양 진영의 슬로건이 반대가 되어야 맞는데, 대한민국의 경우는 남북 대립, 독재, 일제 등의 역사적 경험과 맞물려 기형적은 경쟁구조로 변질된 것이다(실제로 포퓰리즘 공약의 경우 오히려 보수 진영에서 더 남발하고 있다는 점과 구체적 대안 없는 추상적 메시지성 공약만 남발하고 있는 것은 진보 진영이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사실 각 사안별로 진보와 보수의 양 입장을 교차적으로 지니고 있다. ‘EBS 다큐프라임 킹메이커 2부 – 중도파는 중간에 있지 않다’에서 한 실험이 있다. 똑같은 내용을 프레임만 조금 다르게 해서 질문을 했더니 재밌는 결과가 나타난다. KTX 민영화에 대한 질문을 ‘KTX 일부 노선을 사기업에 매각하는 것에 찬성하십니까?’와 ‘고속철도의 경쟁체제도입에 찬성하십니까?’로 나누어서 질문했다. 사실 두 질문은 같은 뜻이다. 전자의 경우 반대가 월등히 많았으나 후자의 경우 찬성에 대한 비율이 전자에 비해 월등히 높아졌다. 이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자신의 정치 성향에 대해 매우 복합적인 대응을 한다는 반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 진영에서는 조금이라도 보수 진영의 사고방식을 지닌 진보에게 ‘회색 분자’라고 낙인을 찍는 것이다. 진보 진영의 ‘순혈주의’ 탓일 것이다. 물론 ‘정통성’ 차원에서 본다면 보수 진영도 마찬가지다. 진영에 따라 상대방을 오로지 비방만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격이다. 진보는 지켜야할 가치와 속도를 감안하며 더 나은 국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보수는 사회 발전을 위한 이상적 가치를 감안하며 공동체를 더 강화해야 한다. 중용을 지키라는 것이지 중립을 지키라는 것이 아니다. 진보는 아직 쓸 만한 데 버리려는 고집을 꺾고 보수는 이젠 쓸모없는 데 안 버리려는 고집을 꺾어야 한다.

 


향후 보수와 진보의 경쟁은 시장 경제 질서에 대한 정의에서 첨예하게 대립하게 될 것이다. 즉 신자유주의 하에서의 대한민국의 방향 설정에 대한 논의로 경쟁하게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 사상으로 무장한 젊은 보수층이 등장할 것이며, 사회 민주주의 사상으로 선회한 중년 진보층이 등장하여 새로운 경쟁 구도가 나타날 것이다. 양 진영의 건전한 경쟁을 위해서는 가장 먼저 부패 척결과 합리적 정치 구조의 개편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은 결국 자신의 진영에 대한 구체적 이해와 상대 진영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단단한 보수가 버티어야 예리한 진보가 탄생할 수 있다. 상상해보라. 대한민국이 보수 일색이거나 아님 진보 일색으로 변한다는 것처럼 한국 정치 역사에 끔찍한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고양이 목에 방울을 함께 달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제는 방울의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남았다. 더 이상 정치인에게 모든 것을 기대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가 자각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Posted by 독방의무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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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 옮긴지 1년 만에 덕수궁으로 돌아왔다.


아관파천 : 을미사변 이후 일본의 영향 아래에서 조직된 제4차 김홍집(金弘集)내각은 일세일원연호(一世一元年號), 태양력 사용, 군제개혁, 단발령의 실시 등 급진적인 개혁을 단행하였으나 명성황후의 시해와 단발령의 실시는 친일내각과 그 배후세력인 일본에 대한 국민의 감정을 극단적으로 자극하여 전국 각지에서 의병항쟁이 일어났다. 이범진(李範晉)·이완용(李完用) 등 친러파 세력은 친위대(親衛隊)가 의병을 진압하기 위해 지방으로 이동한 틈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세력만회와 신변에 불안을 느끼고 있던 고종의 희망에 따라 러시아 공사 베베르(Waeber)와 협의하여 보다 안전한 러시아 공관(공사관)으로 이동(파천)하였다.



1928년 - 도쿄 이중교에서 일왕에게 폭탄 투척한 김지섭 의사, 옥중 순국하다.


김지섭 : 본관 풍산(豊山). 자 위경(衛卿). 호 추강(秋岡). 경상북도 안동(安東) 출생이다. 상주보통학교 교원을 거쳐 금산지방법원 서기, 김응섭(金應燮)법률사무소 상주출장소원을 지냈다. 1919년 3·1운동 때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활약하다가 1920년 중국으로 망명,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였고, 상하이[上海]·베이징[北京]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1924년 제국의회에 참석하는 일본고관들을 저격하고자 도쿄[東京]에 잠입하였으나 제국의회가 무기한 연기되는 바람에 계획을 변경하여 일본 궁성(宮城)의 니주바시[二重橋]에 폭탄 3개를 던지고 현장에서 체포되어 이치가야[市谷] 형무소에서 복역 중 옥사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1947년 -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다.


인도 독립 : 델리의 총독관저에서 열린 장엄한 예식에서, 인도의 마지막 총독인 마운트배튼 경은 인도의 초대 지사로 취임하였다. 의회에서 정중한 연설을 마친 뒤 저녁 8시 30분, 유니언잭이 내려지고 인도 국기가 게양되었다. 조지 6세는 더 이상 황제가 아니었으며 인도 총독 역시 더 이상 총독이 아니었다. 불꽃놀이가 델리 하늘을 환하게 밝혔으며, 이튿날까지 파티가 계속되었다. 뉴스는 기억하는 한 최다 군중이 "기뻐서 날뛰었다"고 전했다. 영국은 이것이 1857년 동인도회사로부터 통치권을 넘겨받으면서 공식적으로 시작된 영국 통치의 성과라고 말했다. 영국을 몰아내는 데는 두 번의 세계대전과 인도 민족주의의 성장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영국이 철수 날짜를 못박았을 때 인도 정치계는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었다. 결국 인도가 두 개의 국가로 분리된 뒤에야 힌두교도가 주도하는 국민회의와 무슬림 연맹 사이의 교착 상태가 깨질 수 있었다. 신생 이슬람 국가 파키스탄에서는 유니언잭 대신 이슬람의 별이 박힌 파키스탄 국기가 게양되었다. 권력 이양의 위엄은 여러 면에서 수백만 명이 자신의 종교를 따라 국경 너머로 이주하면서 일어난 성난 주민들의 긴장과 폭동, 학살을 뒤에 감춘 겉치레에 불과했다. 이전까지 반(半) 독립국가였던 프린슬리 스테이츠(군주국)는 인도와 파키스탄 중 한쪽에 가담하기로 했다. 인도는 세계 최대의 민주 국가가 되었지만 파키스탄의 경우는 좀더 복잡했다. 결국 파키스탄 동부는 1971년 독립하여 방글라데시를 건국하게 된다.



1961년 - 3.15부정선거 관련자들에 대한 1차 공판이 열렸다


3.15부정선거 : 3월 15일 선거에서 대통령 이승만은 12년간 지속된 장기집권체제를 연장하고, 승계권을 가진 부통령에 이기붕(李起鵬)을 당선시키기 위하여 대규모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전국적으로 유령유권자 조작, 4할 사전투표, 입후보 등록의 폭력적 방해, 관권 총동원에 의한 유권자 협박, 야당인사의 살상, 투표권 강탈, 3~5인조 공개투표, 야당참관인 축출, 부정개표 등이 자행되었다. 그 결과 자유당 후보의 득표율이 95~99%에 이르렀으나 하향조정하여 이승만 963만 표(85%), 이기붕 833만 표(73%)로 발표하였다. 그러나 3월 15일 마산(현 창원시)에서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 시위진압 도중 경찰의 실탄발포로 최소한 8명이 사망하고, 72명이 총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어 4월 19일 대규모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결국 4월 26일 대통령 이승만이 하야성명을 발표함으로써 자유당 정권은 붕괴되었다.



1968년 - 재일동포 김희로 13명을 인질로 일본경찰과 대치하다.


김희로 사건 : 권희로(權禧老, 1928년 11월 20일 일본 시즈오카 현 ~ 2010년 3월 26일 대한민국 부산광역시)는 재일 한국인 2세, 기업가, 범죄자로의 일본 최장기수였으며 일본인 조직폭력배를 살해한 죄로 체포되어 24년간 복역하였다. 그는 1999년 대한민국에 돌아올 때까지 김희로(金嬉老)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따라서 김희로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일본 시즈오카 현 시미즈 출생이지만 그의 고향을 모친의 출생지인 부산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1999년 대한민국 귀국 이후 부산광역시와 서울특별시에 주로 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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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독방의무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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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한번째 이야기 – 아기돼지 삼형제(원자의 발견과 양자역학, 그리고 전쟁)

 


줄거리 : 옛날 옛적에 아기돼지 삼형제가 엄마돼지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엄마돼지가 각각의 집을 짓고 독립하여 살되 나쁜 늑대를 조심하라고 경고를 해준다. 그래서 아기돼지들은 각자의 길로 떠나게 된다. 첫째 아기돼지는 짚으로 집을 지어서 늑대가 쉽게 무너뜨리고 잡혀먹는다. 둘째 아기돼지도 나뭇가지로 집을 지었지만 마찬가지로 늑대에게 잡아먹힌다. 셋째 아기돼지는 벽돌로 튼튼하게 집을 지어서 늑대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하지만 늑대는 화가나 셋째 아기돼지의 집 굴뚝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아기돼지가 준비해둔 끓는 물에 빠져 황급히 달아난다.


사실 이 이야기에서 교훈을 이끌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저 건축학적으로 보았을 때 집은 튼튼한 재료로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원자의 세계로 들어 가보면 짚이나 나무, 그리고 벽돌의 구성성분은 큰 차이가 없다. 정말 아주 아주 작은 차이가 있기에 오히려 그 세계를 들여다보면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저 이야기는 물리학자들에게는 그리 큰 감흥을 주지 못할 것이다(물론 읽지도 않겠지만). 그래서 오늘은 시사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바로 그 재료에 대한 복잡하고 재밌는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다. 이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지금이야 우리는 과학시간에 분자-원자-핵 등으로 이루어져있다고 배우고 있다. 하지만 그 발견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며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치열한 ‘전쟁’이 있었는지를 알아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물리학도가 아니기 때문에 중간중간 용어의 그른 선택이나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미리 밝혀두며 이 부분에 대해 아는 분들은 꼭 가르침을 주기 원한다.


지금으로부터 딱 110년 전에 루드비히 볼츠만(Ludwig Boltzmann)이라는 과학자가 호텔에서 자살을 했다. 그는 평소에 우울증을 갖고 있었는데 그 원인은 바로 그의 이론에 대한 기존 과학자들의 배척과 비난이었다. 그가 주장한 것은 물질은 무한하게 나뉠 수 없으며 결국 아주 작은 입자로 이루어졌다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정설로 굳혀진 원자론으로 불리는 그의 주장은 당시에 우스갯소리 취급을 당했다. 물론 이런 비슷한 주장을 하는 과학자가 몇몇이 있었지만 어차피 현미경으로도 볼 수 없기 때문에 과학의 영역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19세기 중반에 증기기관의 발달은 원자가 실제로 존재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불러 일으켰다.


 증기기관의 발달로 인해 과학계와 산업계에서는 고온과 고압의 증기기관 내부의 물과 증기의 행동 패턴을 이해하고 예측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이 때 볼츠만은 이미 증기가 수백만 개의 입자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종의 방정식을 통해 증기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예측해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대파는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의 방정식이라는 것이 수학적 편의에 불과하다고 반박했으며 볼츠만의 이론을 허구의 소설로 치부해버렸다. 이런 이유로 우울증을 앓다가 결국 볼츠만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던 것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그가 죽기 1년 전에 이미 그의 이론이 인정을 받았으나 미처 그가 그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다. 1년 전에 이미 26세의 한 젊은 과학자가 원자의 존재를 논문을 통해 명쾌하게 증명했던 것이다. 그가 바로 그 유명한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다. 로버트 브라운(Robert Brown)은 1827년에 꽃가루의 작은 입자가 물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논문을 하나 발표했다. 이 논문은 꽃가루를 물에 풀어 놓고 현미경으로 관찰한 것에 대한 것인데, 꽃가루가 천천히 퍼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범퍼카처럼 이리저리 바쁘게 왔다갔다 움직이는 현상에 관한 것이다. 이 ‘브라운 운동’에 관한 논문으로 아인슈타인은 원자의 존재를 증명한 것이다. 즉 아인슈타인은 물이 작은 입자로 이루어져있고 이 입자가 꽃가루를 건드리는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또한 그는 이 논문을 통해 원자의 크기까지 계산했다. 당시 계산 값은 바로 1/1010m 였다.

 

결국 볼츠만의 원자론은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원자의 존재를 통해 이론을 이제 막 발전시키려는 찰나 갑자기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1910년의 영국 맨체스터에는 두 명의 과학자가 있었다. 바로 어니스트 러더포드(Ernest Rutherford)와 닐스 보어(Niels Bohr)다. 둘은 성격 등을 포함해 매우 다른 스타일을 갖고 있었는데 러더포드는 실험주의자였고 보어는 이론주의자였다. 한편 이미 1896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중요한 발견이 있었는데, 바로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우라늄에서 나오는 방사선이었다. 러더퍼드는 바로 이 방사선에 주목했다. 그는 방사선을 갖고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1909년 그는 특별한 실험을 하나 진행했다. 이를 위해 라듐의 성질을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한다. 라듐에서는 아주 강한 방사선이 나오는데 러더포드는 그것을 알파선이라고 했다. 라듐은 이 방사선 즉 입자들을 계속해서 밖으로 쏘아대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이 성질을 이용해서 그는 제자들에게 간단한 실험을 맡긴다. 라듐 앞에 아주 얇은 금박을 배치하고 그 뒤에 인광판(phosphor screen)을 설치한 다음 금박을 투과해서 인광판에 도달한 입자의 수를 세는 것이었다. 대부분 입자는 금박을 통과했다. 그러나 러더포드는 아주 가끔씩 통과 못하고 튕겨져 나오는 입자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8,000개 중에 한 개였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러더포드는 원자의 세계가 마치 태양계와 같다고 추측했다. 음전하를 띤 전자가 양전하를 띤 핵의 주위를 회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알파선 입자들 중 몇은 바로 이 핵에 부딪혀 통과하지 못하고 튕겨져 나오고 나머지는 그 빈 공간을 통과한 것이다. 그래서 8,000번 중에 1번이라는 것으로 핵이 원자보다 1/10,000의 크기라는 것을 계산한 것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모형에 따르면 원자는 대부분 빈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알파입자가 원자를 통과한 것이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우리 몸 전체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그렇기에 빈공간이 대부분이라는 괴상한 결론에 다다른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다. 이런 방식의 설명을 전제할 때 기존 물리학에 따르면 핵의 주위를 도는 전자는 언젠가는 그 회전력을 잃고 핵으로 향해야 한다. 즉 원자가 붕괴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기에 기존의 과학자들은 큰 혼란에 빠졌으며 그 때까지의 모든 이론을 수정해야 했다. 이른바 패러다임의 교체였다.

이제 새로운 젊은 과학자들이 원자론을 갖고 구세대와 대립하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닐스 보어였다. 그는 러더포드에게 달려갔으며 왜 원자가 붕괴하지 않는지 밝히는 것을 자신의 숙제로 삼았다. 그는 원자의 수수께끼를 빛과 연결 지어서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물질을 가열하면 빛을 낸다. 그리고 그 빛은 물질에 따라 다른데 예를 들어 구리는 푸른색, 나트륨은 노란색을 발한다. 이것을 스펙트럼(spectrum)이라고 한다. 보어는 이것을 통해 원자 모델을 설명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양자 도약(Quantum Leap)’이다. 이 괴상한 이론은 다음과 같다. 보어는 러더포드와 달리 원자를 태양계로 설명하지 않고 고층빌딩으로 설명했다. 맨 아래 1층에는 핵이 산다. 그리고 위층에는 전자들이 산다. 이 때 가끔 전자들이 다른 층으로 순식간에 이동을 하며 전자들이 고층에서 저층으로 내려올 때 빛을 낸다는 것이다. 또한 내려온 그 거리에 따라 빛의 색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는 수소실험을 통해 이것을 증명해냈다. 그러나 문제는 보어조차도 왜 원자가 빌딩구조를 하고 있는지 또한 왜 양자도약이 일어나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양자도약은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기존 과학자들의 반발을 샀다. 즉 원인을 설명할 수 없는 이론은 과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존 과학자들은 이 젊은 신세대 과학자들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그 지도자가 바로 아인슈타인이었다. 아인슈타인은 1920년대 초까지 보어의 이론을 반박하는 것에 전력을 다했다. 그러나 그 이론은 쉽게 깨지지 않았다. 그러나 1925년에 아인슈타인에게 한 통의 편지가 오게 되는데 이를 통해 구세대 과학자들은 다시 반격의 깃발을 올리게 된다.

편지는 보낸 프랑스인 박사는 바로 루이 드 브로이(Louis de Broglie)였다. 그는 전쟁 중에 전파로 원자를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전파도 역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방정식으로는 설명할 수 있었다. 그는 원자 주위에 파일럿 파라는 전파가 흐르는데 이것이 전자를 궤도에 잡아두는 역할을 한다고 논문에 썼다. 즉 파동이 전자를 잡아주기에 원자가 붕괴되지 않으며 또한 양자 도약이라는 개념을 이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 프랑스 학자의 논문에 크게 감동받아 젊은 과학자 집단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은 승리를 자신했다. 물론 보어를 위시한 젊은 세력도 가만히 앉아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그들은 양자 도약을 다시 새로운 이론으로 재무장하여 반격을 도모하였다. 바로 볼프강 파울리(Wolfgang Pauli)의 배타 원리(exclusion principle)였다.

 


파울리의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왜 원자는 동일한 구성물로 형성되는데 그렇게 많은 형태와 다양한 특성을 보이는 것일까? 예를 들어 금과 수은은 전자 하나의 차이밖에 없다. 금이 79개, 수은이 80개다. 왜 전자 하나 차이가 두 물질의 큰 변화를 가져오는 것일까. 파울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어의 이론에 수정을 한다. 보어의 이론에 더해 각 층에 들어가는 전자의 수가 정해져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원자에 전자가 추가될 때 맨 윗 층에 이미 전자가 들어가 있다면 새로운 층이 그 위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원자가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며 원자의 성질 또한 바뀐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배타 원리였다. 이를 전제로 그는 지구상 모든 생물의 다양성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결국 이 이론도 보어의 이론과 마찬가지로 허점이 있었다. 그 원인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역시 이를 이유로 아인슈타인의 구세대 과학자 집단은 이를 반박하기 시작했다. 점점 양 진영은 과격하게 상대를 비난했고 승리를 위해 모든 지성을 쏟아 부었다. 그래서 결국 양 집단에 새로운 돌격대장이 임명되게 된다. 신세대 과학자 집단에서는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가, 구세대에서는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odinger)가 나서게 된다.

 


슈뢰딩거는 브로이의 이론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그는 전자가 에너지의 파장 때문에 너무 빨리 움직여서 구름처럼 보인다고 했다. 또한 그 파동을 방정식으로 완벽하게 표현해내었다. 이 의미는 바로 고전 물리학적 관점에서 원자를 묘사할 수 있었다는 것에 있다. 바로 슈뢰딩거의 파동 방정식이다. 이를 통해 신세대 과학자 집단이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원자의 세계를 간단하게 표현해줄 수 있었다. 구세대 과학자들은 그 안정감에 매료되었다. 적어도 그들은 원자의 모습을 기존의 이론으로 묘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이론도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양자 도약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신세대 과학자들은 이 약점을 가만 두지 않았다. 특히 신세대 세력의 새 돌격대장 하이젠베르크는 슈뢰딩거에게 강한 경쟁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원자를 설명하기 위한 태양계 비유나 고층빌딩 비유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기존의 모형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는 원자의 특성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수학이 필요하다고 깨달았다. 이를 단순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기본적으로 곱셈은 그 순서가 상관없다. 즉 4*7이나 7*4에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원자에서는 곱셈의 순서에 따라 값이 달라진다. 그는 이러한 차이를 행렬을 이용하여 풀어냈다. 그 결과 수식을 이용하여 원자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예측해낼 수 있었다. 당연히 이 수식에 대해 구세대의 과학자들은 크게 반발했다. 그들이 보기에 이 말도 안 되는 수학은 기존의 수학이론마저도 부정하는 결과였기 때문이며 나아가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하이젠베르크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원자를 물리적 실체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기에 큰 비난을 받아야 했다.

하이젠베르크는 크게 낙심했다. 그는 슈뢰딩거의 강의실을 찾아 갔다가 공개적인 야유를 받기도 했다. 그는 그의 경력이 거의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는 경이로운 질문을 하나 떠올렸다. 왜 원자를 시각화할 수 없는가? 왜 원자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가? 그 대답은 단순했다. 그것은 원자가 본질적으로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원자가 갖고 있는 속성 자체가 그렇다는 것이다. 즉 원자의 위치를 알면 그 속력을 알 수 없으며 그 속력을 알면 그 위치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과학의 한계 문제가 아니라 자연의 본질 문제였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Uncertainty Principle)다. 원자의 위치와 속력을 동시에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이 이론을 바탕으로 하이젠베르크와 보어는 더욱 대담하게 이론을 전개할 수 있었다. 원자는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이다. 또한 원자를 관찰하고 있지 않을 때는 원자는 파동처럼 행동하지만 그 위치를 찾으려고 하면 입자의 성질을 보인다. 이 이상하고 모순적인 행태가 바로 자연의 본질적인 속성이었으며 오로지 수학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었다.

 


드디어 1927년 양 진영은 최후의 전투장소로 브뤼셀의 솔베이 학회를 택했다. 여기에 당시 세계의 모든 유명 원자 물리학자들이 다 모였다. 학회 내내 양 진영의 장수들이 차례로 나와 보어의 양자 역학에 대해 격렬하게 싸웠다. 최후의 싸움은 양자의 수장인 보어와 아인슈타인이 마무리했다. 보어는 마지막 날까지 아인슈타인의 공격을 모두 받아내었다. 그리고 결국 보어의 승리로 그 긴 싸움의 종지부를 찍었다. 그 날이 바로 구세대를 신세대가 대신하는 순간이었다. 이제 자연은 확률과 우연으로 설명되고 원자를 설명하기 위해 수학을 사용해야 했다. 그 이후의 원자 물리학은 바로 이 학회의 결과에 토대를 두고 있다.

 

다시 거시적인 세계로 돌아오자. 오히려 아기 돼지가 집을 무엇으로 지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매우 부차적인 문제로 보인다. 물론 당연히 벽돌로 지은 집이 거시세계에서는 더 튼튼하다. 하지만 실제 우리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 저 저변에서 보면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우리 같은 일반 사람들이 평생 원자와 전자에 대해 깊이 생각할 일이 몇 번이나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 삶을 둘러싼 이 세계가 어떤 원리로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찰리 채플린과 아인슈타인의 일화 하나를 소개하며 마무리를 한다. 이 글은 BBC 다큐 원자의 세계를 참고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환호하는 관중들을 보며 채플린에게 말을 건넸다.

 

“당신은 참 위대해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이해하고 있죠.”

 

그 말을 들은 채플린이 답했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더 위대해요. 아무도 당신의 이론을 이해하지 못하는데도 모든 사람이 당신을 존경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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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6일 


1945년 - 윤동주가 옥중에서 사망하다.



윤동주 : 동주(尹東柱, 1917년 12월 30일 ~ 1945년 2월 16일)는 한국의 독립운동가, 시인, 작가이다. 아명은 윤해환(尹海煥)이며 창씨개명이후의 이름은 히라누마 도슈(平沼東柱 )이다. 본관은 파평(坡平). 중국 만저우 지방 지린 성 연변 용정에서 출생하여 명동학교에서 수학하였고, 숭실중학교와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숭실중학교 때 처음 시를 발표하였고, 1939년 연희전문 2학년 재학 중 소년(少年) 지에 시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일본 유학 후 도시샤 대학 재학 중 , 1943년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福岡刑務所)에 투옥, 100여 편의 시를 남기고 27세의 나이에 옥중에서 요절하였다. 사인이 일본의 소금물 생체실험이라는 견해가 있고 그의 사후 일본군에 의한 마루타, 생체실험설이 제기되었으나 불확실하다. 사후에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되었다. 일제 강점기 후반의 양심적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았으며, 그의 시는 일제와 조선총독부에 대한 비판과 자아성찰 등을 소재로 하였다. 그의 친구이자 사촌인 송몽규 역시 독립운동에 가담하려다가 체포되어 일제의 생체 실험 대상자로 분류되어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1990년대 후반 이후 그의 창씨개명 '히라누마'가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본명 외에 윤동주(尹童柱), 윤주(尹柱)라는 필명도 사용하였다.


1959년 -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의 대통령에 취임하다.


카스트로 : 오늘날 쿠바의 국부(國父). 쿠바의 혁명가, 정치인, 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권으로부터 쿠바를 해방시킨 혁명가라는 평가와, 언론 탄압은 물론 정적과 반대파 숙청을 행한 독재자라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미국과의 오랜 대립 속에 반미적인 성향을 지닌 것으로 유명하며, 한 때 복지정책을 통해 쿠바인에게 인기를 얻기도 했으나 공산권의 붕괴로 인해 쿠바 역시 큰 타격을 입었고 쿠바 의료계의 현실이 알려진 것처럼 선진국 수준까진 아니기에 자국에서도 어느 정도의 비판이 있다. 하지만 바꿔말하면 북한과는 달리 미국의 봉쇄가 지속되고 소련의 지원도 끊긴 특별기간을 극복했다는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목소리도 높다. 쿠바 자국에서 뿐 아니라, 제3세계에 대한 협력과 지원으로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여전히 호의적인 평가가 우세하다.


1978년 - 첫 컴퓨터 전자게시판 시스템이 만들어지다 (시카고의 CBBS).



전자게시판 : BS는 Bulletin Board System의 약어로 전자게시판이라고도 하는데 PC(퍼스널컴퓨터)통신에서 불특정 다수의 PC통신망 가입자를 대상으로 메시지를 써 넣을 수가 있으며 또 다른 가입자의 메시지를 자유롭게 꺼내 볼 수도 있는 시스템을 말한다. BBS를 운용하는 기본적인 네트워크인 PC통신의 형태는 PC끼리 직접 통신하는 엔드 투 엔드(end to end)형태와 컴퓨터센터를 매개로 하여 통신하는 센터 투 엔드(center to end)형태로 크게 나뉘는데 BBS는 후자의 형태에서 센터의 파일상에 게시판을 마련, PC로부터의 정보를 회선을 경유해 액세스하는 시스템으로 게시판은 장르별로 가입자간의 정보교환미디어로 이용돼 이용자에 의한 정보의 선택, 검색이나 알리고자 하는 정보를 써넣기도 가능한 1대 다수의 PC통신이다. BBS는 PC통신 가입자가 어떤 테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는 알림이나 이러이러한 사실에 대해 알고싶다고 하는 메시지를 전자게시판에 써넣음으로써 그 전자게시판을 통해 불특정 다수의 회원에게 알리게 되며 마찬가지로 다른 회원이 써넣은 메시지도 자유롭게 볼 수 있는 것. 세계최초로 개인레벨의 네트워크를 만든 것은 1978년 미국 시카고에 살던 크리스찬센이란 사람에 의해서였고 지금은 BBS가 미국에는 3,000정도, 일본엔 1,000개 시스템 정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05년 - 지구 온난화의 규제 및 방지를 위한 국제협약인 교토 의정서가 발효되다.


교토의정서 : 교토 의정서(京都議定書, 영어: Kyoto Protocol, 문화어: 교또의정서)는 지구 온난화의 규제 및 방지를 위한 국제 협약인 기후변화협약의 수정안이다. 이 의정서를 인준한 국가는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여섯 종류의 온실 가스의 배출량을 감축하며 배출량을 줄이지 않는 국가에 대해서는 비관세 장벽을 적용하게 된다. 1997년 12월 11일 일본 교토 시 국립교토국제회관서 개최된 지구 온난화 방지 교토 회의(COP3) 제3차 당사국 총회에 채택되었으며 2005년 2월 16일 발효되었다. 정식 명칭은 기후 변화에 관한 국제 연합 규약의 교토 의정서(Kyoto Protocol to the 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다.


2009년 - 대한민국의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다.


김수환 추기경 : 김수환(金壽煥)은 대한민국의 천주교 성직자이자 사회운동가이다. 한국인 최초로 로마 가톨릭교회의 추기경에 서임되었다. 본관은 광산. 세례명은 스테파노이며 아호는 옹기이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군사 정권 당시 군사 독재정권 퇴진 운동과, 시민 활동을 하였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부터는 사회 운동과 방송 활동, 복지 사업, 언론 활동, 강연 활동 등을 하였다. 한국 가톨릭계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수십 년간 군부 정권의 독재에 저항하며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인권의 수호자로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신념과 공동선의 추구를 바탕으로 교회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신앙을 실천한 인물이었다. 로마교구의 '산 펠리체 다 칸탈리체 첸토첼레 성당' 명예주임사제직의 사제급 추기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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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째 이야기 –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잊혀질 권리와 표현의 자유)

 


줄거리 : (삼국유사 버전) 경문왕은 귀가 당나귀처럼 길다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단 한 사람, 그의 모자를 만드는 사람만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해 답답해하다가 죽기 전에 도림사(道林寺) 쪽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고 외쳤다. 뒤이어 이 소리는 바람을 타고 전국에 퍼졌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이런 소리가 들리자 경문왕은 대나무를 베어 버리고 산수유나무를 심도록 했는데 그 후로는 "임금님 귀는 길다." 라는 소리가 들리게 되었다고 한다.

 


동화에 대해 글을 쓰다 보면 재밌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데 비슷한 이야기가 다른 나라에서도 전해진다는 것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에도 나오고 유고슬라비아에도 있다. 임금님이 크게 깨달아 백성의 이야기를 큰 귀로 더 잘 듣겠다고 다짐한 내용은 유고슬라비아 버전이다. 이 외에도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나 심청전 등의 이야기도 다른 나라에 비슷하게 존재한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발견했을 때 인류의 공통 정서라는 부분에 대해 공감하고 조금 더 사고방식을 넓게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또 있다. 세 이야기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당나귀 귀를 가진 이가 모두 ‘왕’이라는 것이다. 즉 권력자에 대한 민중의 저항 내지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욕구를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이 이야기는 표현의 자유, 나아가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 사실 ‘잊혀질’ 이라는 것은 피동 표현이 중복되므로 ‘잊힐’ 권리가 맞다)라는 두 가지 상반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다만 이야기에서 한 쪽 상대방을 ‘왕’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중립적인 논지가 어려우므로 이하에서는 양자를 동등한 입장에서 다루도록 한다.

 


잊혀질 권리란 아직 명확한 정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기록이 저장되어 있는 영구적인 저장소로부터 특정한 기록을 삭제할 수 있는 권리' 또는 '자신의 정보가 더 이상 적법한 목적을 위해 필요치 않을 때, 그것을 지우고 더 이상 처리되지 않도록 할 개인의 권리'를 의미한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2(정보의 삭제요청 등) ①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일반에게 공개를 목적으로 제공된 정보로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등 타인의 권리가 침해된 경우 그 침해를 받은 자는 해당 정보를 취급한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침해사실을 소명하여 그 정보의 삭제 또는 반박내용의 게재를 요청할 수 있다.’ 의 규정으로 법제화 되어 있다. 2010년에 스페인의 변호사인 마리오 코스테하가 구글(Google)과 신문사에 소송을 제기한 바가 있다. 그는 구글에 자신의 이름을 검색했을 때 예전 빚 문제와 재산 매각 내용이 나온 것을 두고 해당 부분을 삭제할 것을 요구하였다. 구글은 내용이 모두 사실이기에 삭제할 이유가 없다고 거부했고 코스테하는 스페인 법원에 소송을 걸었다. 그 결과 2014년 5월 13일에 유럽 사법재판소는 구글에게 웹페이지의 링크를 삭제하라고 판결하였다. 법원이 잊혀질 권리를 인정한 첫 번째 사례였다.

최근 주식부자로 알려진 이희진씨가 사기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는 각종 SNS와 TV 출연을 통해서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였고 그것으로 인해 더 많은 투자자들을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사기 행각이 드러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는데 바로 인터넷상에서의 ‘명예훼손’문제였다. 사기를 당한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씨는 자신의 법무팀을 통해 각 포털 사이트에 자신에 대한 내용을 삭제 요청했다. 표현의 자유가 발달한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명예훼손 규정이 상대적으로 강하기 때문에 그동안 일반 대중은 이씨에 대한 진실을 알 방법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이씨는 마음껏 사기행각을 벌일 수 있었다. 이런 것도 있다. 최근 몇몇 커뮤니티에서는 ‘상기’라는 용어가 쓰이고 있는데, 이는 과거에 잘못을 한 사람들을 잊지 말고 인터넷에서 상기하여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네티즌들은 이 상기를 통해 주기적으로 과거의 일을 업로드하여 가해자 및 일반대중에게 경각심을 갖도록 한다. 또한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이 과거에 자신과 관련되었던 기사를 삭제 요청하여 저질렀던 잘못을 숨겨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사례들로 판단해보면 잊혀질 권리가 공익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과연 모두 정당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물론 잊혀질 권리가 필요한 경우도 많다. 많은 사람들이 뽀빠이 이상용을 기억한다. 우정의 무대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으며 심장병 어린이 돕기를 통해 많은 아이들을 살렸다. 그러나 그는 억울하게 횡령 사건으로 기소를 당했으며 결국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해야 했다. 당시 모든 매체가 이를 대대적으로 다루었다. 물론 이는 무혐의로 밝혀졌다. 그러나 그가 무혐의를 받았다는 뉴스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지금 인터넷에 이상용을 검색하면 그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무혐의를 받은 사연에 대해 나오지만 공식적으로 그가 무혐의를 받았다는 기사는 거의 없다. 물론 각 포털 사이트에 횡령 사건 자체에 대해서는 삭제 요청을 하여 해당 기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 다른 예도 있다. 어떤 여성은 성인 사이트에서 자신의 부적절한 영상이 돌아다니는 것을 발견하고는 이를 삭제 요청했다. 그러나 이런 영상들은 워낙 복잡하게 퍼져있고 또한 많은 성인 사이트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바람에 결국 완전삭제란 불가능하다. 해당 여성이 자살로 삶을 마감한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이처럼 잊혀질 권리는 양날의 검과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다.

 


가장 쉽게 판단해보면 잊혀질 권리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인정해주고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에게는 허락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사실 그 판단을 누가 내리며 또한 그 판단의 공정성은 누가 담보하느냐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이것에 관해 유럽 사법재판소의 판결보다 조금 더 빠른 2013년의 우리나라 대법원 판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사건은 노컷뉴스가 원고의 미국 정보원 역할 의혹을 집중 제기하자 원고가 명예훼손을 이유로 웹사이트와 포털의 삭제를 요청한 것이 요지이다. 대법원은 “기사(49건)를 삭제하고 D사, N사 등의 포털 사이트에 해당 기사의 삭제를 요청하라”고 판결한 1심과 원심을 인용하고 노컷뉴스의 상고를 기각했다. 이 판례를 통해 기사삭제의 당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대법원은 “그 표현 내용이 ①진실이 아니거나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이 아닌 기사로 인해 ②현재 원고의 명예가 중대하고 현저하게 침해받고 있는 상태에 있는지 여부를 ③언론의 자유와 인격권이라는 두 가치를 비교·형량하면서 판단하면 되는 것”이라고 3단계 심사기준을 제시했다. 위 기준을 통해 공적인 자리에 있는 정치인에 대한 잊혀질 권리가 제한될 수 있다. 그러나 공인이 아닌 일반 사인이 과거 사실을 이유로 현재 고통을 받고 있는 경우가 애매한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A라는 사람은 과거 범죄를 저지르고 소년원에 갔었다. 그 후 그는 갱생되어 착실하게 기술도 배우고 학교도 마쳤다. 그리고 그 일이 미담이 되어 기사에 실리게 되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 그가 결혼을 앞두고 이 기사로 인해 예빈 신부와 갈등을 겪게 된다. 즉 신부 측 가족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분명히 반대한다는 것이다. A는 자신의 기사를 삭제해줄 것을 요청중이다. 이 같은 사례로 보건데 잊혀질 권리에 대한 판단은 쉽지 않은 문제다.

 


대한민국은 헌법 제21조 제1항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명시하되 동조 제4항을 통해 그것에 대한 한계를 규정했다. 누구나 인터넷이라는 대나무 숲에 가서 소리칠 수 있다. 그것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든 남의 이야기든 말이다. 그러나 대나무 숲은 상대방을 가리지 않고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고 외친다. 그렇기에 표현의 자유는 그것을 행사하는 사람이 분명하게 책임져야 한다. 언론은 역할은 남이 모든 것을 알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실로 고통 받을 임금님 또한 배려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많은 사람들이 표현의 자유에 대해 오해를 한다. 표현의 자유는 결코 상대방을 모욕하거나 거짓을 말할 자유를 포함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한민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확인도 안 한 채 ‘리트윗’과 ‘공유하기’로 자신의 생각이 아닌 감정을 대나무 숲에 퍼트리고 있다. 대나무가 선비의 상징이라는 말이 무색해지고 있다. 잊혀질 권리는 정보화 사회에서 당연히 거쳐 가야할 논의다. 그리고 그 중요성의 크기는 성숙한 인터넷 문화에 반비례할 것이다. 무려 200년 전에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의 한 부분을 보며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재점검해보도록 하자.

 


 

이 편지가 번화가에 떨어져 나의 원수가 펴보더라도 내가 죄를 얻지 않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써야 하고, 또 이 편지가 수백 년 동안 전해져서 안목 있는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더라도 조롱 받지 않을 만한 편지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 다산 정약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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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째 이야기 – 선녀와 나무꾼(거짓말과 오도된 진실)

 


줄거리 : 아주 옛날 한 마을에 나무꾼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사냥꾼에게 쫓기던 사슴 한 마리가 달려와서는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나무꾼은 쌓아 놓은 나뭇더미 속에 사슴을 숨기고는 사냥꾼에게 거짓말을 했다. 살아난 사슴은 나무꾼에게 산을 돌아 나가면 하늘의 선녀들이 멱을 감는 연못이 있으며 멱을 감는 틈을 타서 그중 선녀의 날개옷을 감추라고 했다. 다만 둘이 결혼해서 세 아이를 낳기까지는 날개옷을 감추고 절대로 보여 주지 말라고 했다. 나무꾼은 연못을 찾아가서 사슴이 일러준 대로 했다. 멱을 다 감은 선녀들이 다들 하늘로 돌아가는데, 날개옷을 도둑맞은 막내 선녀는 그러지 못하고 울고만 있었다. 나무꾼은 막내 선녀를 제 집으로 데리고 와서 아내로 삼았다. (후략)

 

필자는 옛날부터 이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사냥꾼에 대한 연민과 결혼하기 위한 나무꾼의 범죄 행위 등 그다지 아름다운 이야기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이야기는 국제결혼의 문제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아껴(?) 놓았는데 최근 고위층 인사들의 거짓말이 화두에 오르기에 이렇게 꺼내 놓게 되었다. 이야기에서 나무꾼은 사슴을 살리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많은 동화책에서는 나무꾼은 착한 이미지로 그려 놓고 사냥꾼은 대부분 털보에 험악한 이미지로 그려진다. 아이들은 그림을 보며 나무꾼의 거짓말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동의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가 계속 강조했듯이 이렇게 상징을 통해 생각할 기회를 뺏는 것은 결코 아이들에게 좋지 않다. 다만 이 글에서는 사냥꾼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것에 대한 정당성은 이야기하지 않도록 한다. 이번에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슴을 살리기 위한 목적으로 사냥꾼에게 거짓말을 하는 행위’가 과연 정당한지에 대한 논의와 기타 거짓말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들이다.

 

윤리적 행위의 기준은 다음 질문의 답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옳은 행동을 옳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결과주의 윤리설은 “행동은 그것이 좋은 결과를 갖는 한 옳다.” 라고 대답을 하고 동기주의 윤리설은 “행동은 의무의 최고 원리의 요구사항을 만족하는 행위의 규칙에 일치하면 옳다.” 라고 대답한다(전자를 목적론적 윤리설, 후자를 의무론적 윤리설이라고 하기도 한다).

즉 다시 말해 전자는 결과가 선하고 좋으면 옳고 후자는 동기가 선하고 좋으면 옳다는 것이다. 전자의 대표적인 학자로는 벤담이나 밀이 있고 후기의 대표적인 학자로는 칸트가 있다. 이 기준으로 보았을 때 나무꾼의 행위는 벤담에게는 옳은 행위고 칸트에게는 그른 행위가 된다. 물론 이를 다 포섭하려고 하는 절충주의 윤리학이 있기는 하지만 위 두 이론만큼 명확하지 않다. 다만 이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논의는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저서인데 바로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의 「정의란 무엇인가? :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이다.

 


샌델은 저서에서 공직자와 정치인의 도덕성은 일반인보다 높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루스벨트와 존슨의 거짓말을 예로 든다. 둘 다 전쟁 준비를 부정하여 대중을 속였는데 루스벨트가 히틀러에 대한 기만을 위한 거짓말을 했다면 존슨은 당선을 위한 거짓말을 했다.

즉 둘의 거짓말에는 목적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서로의 도덕적 지위가 다르다고 말한다. 존슨의 거짓말은 도덕적으로 가치 없는 목적을 위해 행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경우와는 달리 클린턴 대통령과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거짓말은 공적인 것이 아니라 사적인 것이었고 비록 그것이 부적절할지라도 사적영역임을 이유로 부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탈무드」를 인용하는데 탈무드에서는 진실을 말하지 않아도 되는 세 가지 예외를 인정한다.

지식, 환대 그리고 성에 대한 거짓말이다.

무엇을 아느냐는 질문에 지적인 과시를 피하기 위한 거짓말, 그리고 손님으로서 접대를 받았을 때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 거짓말, 마지막으로 부부의 성생활과 같은 사안에 대한 거짓말이며 클린턴의 경우에 여기에 해당한다고 했다. 물론 이런 관점은 한국 사회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데 한국의 경우 공직자 및 정치인들에게 사적인 영역에서도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재밌는 논의가 발생한다. 바로 ‘오도된 진실’에 대한 논의다. 오도된 진실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서고 타인을 기만할 수 있음을 말한다.

클린턴이 대선 후보 당시 그는 영국 유학 시절에 마리화나를 피운 적이 있었는데 향락성 약물을 사용 했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미연방이나 주의 마약류 금지법을 위반한 적이 없다” 라고 대답했다.


즉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이런 오도된 진실과 거짓말에 대해 윤리학자들은 대부분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남을 기만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같은 효과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칸트에게는 다르다. 칸트에 따르면 양자는 엄청난 차이를 갖고 있다. 칸트는 살인자가 집으로 찾아와 숨긴 사람이 어디 있냐고 물어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칸트는 거짓말이 그 상대방에게 손해를 입히며 동시에 당사자의 인간적 존엄성도 손상시키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오도된 진실은 다르다. 그것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도덕적 고려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칸트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의 노여움을 산 적이 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는 칸트에게 기독교 신앙을 위협할 수 있는 그 어떤 강연이나 저술을 하지 않을 것을 요구 했다. 그러자 칸트는 약속했다.

“국왕 전하의 충직한 신하로서 저는 앞으로 종교와 관련된 모든 공개 강연과 저술 활동을 완전히 중지할 것입니다.”


몇 년 후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가 죽자 칸트는 바로 기독교에 대한 강연과 저술을 시작했다. 그는 약속도 깨지 않았고 거짓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약속은 오직 ‘국왕 전하의 충직한 신하로서’라는 조건 하에서만 유효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는 오도된 진실에 대한 길을 어느 정도 열어둠으로써 거짓말에 대한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를 이야기에 적용해보면 사냥꾼이 나무꾼에게 사슴을 본 적이 있냐고 물었을 때 나무꾼은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 그 사슴 본 적은 있는데 지금 이 앞에 있지는 않아요.”

사슴은 나무꾼 ‘뒤’의 나무 더미 안에 숨어 있으니 이것이 거짓말이 아닌 오도된 진실로서 가능하다. 물론 우리가 직관적으로 생각할 때 오도된 진실이 정당화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공직자들이나 정치인들이 오도된 진실을 어떤 방식으로 악용했는지 충분히 봤고 그것이 결코 그들의 도덕적 지위를 상승시킨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오도된 진실의 사례를 많이 보고 살아간다. 영국의 정치가였던 벤자민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는 거짓말의 세 가지 종류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 세 가지는 Lie(거짓말), Damn Lie(나쁜 거짓말) 그리고 Statistics(통계)다(유명한 미국 드라마인 West Wing 시리즈 중 하나의 제목으로 쓰이기도 했다). 다음 문장을 보자.

‘올해 매출액이 전년도에 비해 자그마치 120%로 상승했다.’

‘올해 매출액이 전년도에 비해 20%가 상승했다.’

실제 두 문장의 차이는 없다. 그런데도 전자가 후자에 비해 매출액이 엄청나게 상승한 것처럼 보인다. 범죄율도 마찬가지다. 관할 지역 내 살인사건이 전년도에 10명, 올해 7명이었다면 관할서에는 살인사건이 3건 감소했다고 표현하는 대신에 30%가 감소했다고 할 것이다. 진실과 거짓말을 적당히 섞는 경우도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 정권의 선전 장관이었던 파울 요제프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에 따르면 거짓말에는 약간의 진실을 섞어야 제대로 효과를 낸다고 한다. 또 이런 경우는 명백히 거짓말임을 판단하기 어렵다. 민사소송에서 형사소송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사기죄가 성립해야 하며 이때 피의자의 고의성이 입증되어야 하는데 이런 이유로 대부분 피해자들이 구제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의 거짓말을 알아내는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일반적으로 많이 거론된 특징을 몇 가지 살펴보자.

1) 일반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양 눈썹의 중간 부분이 위로 치솟아 이마에 잔주름이 만들어 진다.

2) 사람들은 거짓말을 할 때 평소보다 코를 자주 만지는 경향이 있으며 자주 입을 손으로 가린다.

3) 오른손잡이가 무언가를 지어낼 때는 눈동자가 아래를 향한 후 오른쪽으로 보게 되며 왼손잡이는 그 반대다.

4) 필요 이상으로 많은 정보를 늘어놓는다.

5) 질문을 했을 때 당신이 썼던 단어들을 그대로 반복한다.

6) 거짓말을 할 때 숨을 빠르게 쉬는 경향이 있으며, 짧은 숨을 여러 번 쉬다가 긴 숨을 내 뱉는다.

7) 거짓말쟁이는 침묵을 견디는 것을 굉장히 힘들어 한다. 따라서 당신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면 더 산만하게 설명을 하려 든다.

몰론 이 중 하나로 거짓말을 판별해서도 안 되고 이를 맹신해서도 안 된다.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은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거짓된 말과 행동을 상습적으로 반복하는 일종의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뜻한다.

성취욕구가 강한 무능력한 개인이 마음속으로 강렬하게 원하는 것을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사회구조적 문제로 인해 직면했을 때 많이 발생한다. 이런 사람의 경우는 본인 스스로도 진실로 믿기 때문에 그 사람의 몸짓이나 표정을 통해 판단할 수 없다.

 


거짓말은 분명 인간 사회에 있어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오직 인간만이 거짓말로 남을 해칠 수 있고 남을 구할 수 있다. 필자는 아직도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한다. 사람들이 어머니를 보고는 나의 친척 누나로 오해한다는 거짓말. 그리고 아버지에게도 거짓말을 한다. 이제 나는 다 컸으니 혼자서 다 잘 해낼 수 있다는 거짓말. 칸트처럼 살 수 없으니 거짓말을 아예 하지 않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서 거짓말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을수록 결국 우리는 외로워질 것이다. 남이 나를 못 믿는 것처럼 나도 남을 못 믿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영화 페르마의 밀실(Fermat's Room, 2007)에 나왔던 거짓말에 관련된 문제를 제시하니 시간이 되는 사람은 천천히 풀어보길 바란다.


 "거짓의 나라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다 거짓말을 하고, 진실의 나라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다 진실을 말한다. 한 외국인이 문이 2개 있는 방에 갇혔다. 하나는 자유로 가는 문이고, 하나는 아니다. 한 문은 거짓 나라의 간수가, 다른 문은 진실 나라의 간수가 지키고 있다.

외국인은 자유를 얻기 위해서 각 간수에게 한 번씩 질문을 하고, 답을 들을 수 있다. 어느 쪽이 진실 나라 간수이고 거짓 나라 간수인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외국인은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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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2월 13일



1668년 - 스페인이 포르투칼의 독립을 승인함.

포르투칼의 독립 : 1640년에 국가 복원 혁명이 일어나 포르투갈은 브라간사 공작 주앙을 포르투갈의 주앙 4세로 추대하며 독립을 선언한다. 그러나 에스파냐는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포르투갈 독립 전쟁이 일어난다.


1735년 - 조선 영조대왕의 세자 사도세자가 태어남.

사도 세자 : 장조(莊祖, 1735년 2월 13일(음력 1월 21일) ~ 1762년 7월 12일(음력 윤 5월 21일))는 조선의 왕세자이자 추존왕이다. 영조의 둘째 서자로, 효장세자의 이복 동생이며 정조의 생부이다. 흔히 사도세자(思悼世子) 또는 장헌세자(莊獻世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성은 이(李), 이름은 선(愃),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윤관(允寬). 호는 의재(毅齋)이다.


1951년 - 지평리 전투 시작함

지평리 전투 : 지평리 전투는 1951년 2월 13일부터 2월 16일까지 경기도 양평군 지평리 일대에서 원형 방어진지를 구축한 미국 2 보병사단 23연대전투단(Regiment Combat Team,RCT)과 23RCT에 배속된 프랑스 대대가 중국 인민해방군 39군과 3일간 벌인 격전이었다. 3일 동안 완전히 포위된 미군 23RCT와 프랑스 대대는 포위 3일째인 2월 16일에 미국 1 기병사단 5 기병연대 3대대를 주축으로 편성된 크롬베즈 특별임무부대에 의해 구출되었고, 중국군은 큰 피해를 입고 철수했다.


2004년 - 국회에서 이라크 추가 파병 동의안이 가결되다.

이라크 파병 : 한국의 경우 초기 미국의 파병요구에 보수세력을 중심으로 한 찬성론이 있었다. 물론 진보세력들은 반대. 반대측에서는 불필요한 전비의 사용은 물론, 이라크전이 명분없는 전쟁이므로 참전하였다가 주변 아랍국가들과의 관계가 악화될 것이며, 자칫 테러의 위협성을 높인다는 이유로 반대하였다. 반면 찬성측에서는 미국이 한국과는 각별한 관계의 최우선 우방국이며, 이라크에 대한 민주주의 전파 및 아랍지역의 평화라는 깃발 아래에 유럽의 국가들 역시 참전의사를 밝히는데 한국만 외따로 빠진다는 것은 곤란한 일이며, 이후 미국과의 외교가 난맥을 겪을 수 있다는 점에서 찬성을 주장했다 나중에 무조건 파병반대가 아닌 비전투병, 대민지원 병력에 대해선 상당히 공감이야 하긴 했지만. 기왕 보내는 거 전투병 파병을 보내야지 전투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있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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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 기술(automatic writing, trance writing)



정령 또는 무의식이 지시하는 대로 글을 쓰는 행위를 말한다. 순식간에 의식적인 판단 없이 그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일어나기 때문에 ‘몽환 기술(dream writing)'이라고도 한다. 이런 메커니즘을 통해 무의식 속의 진짜 자아가 있는 잠재의식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일부 심리 치료사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의식 속에 억압된 기억을 해방시킬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 방식이 실제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과학적인 분석은 아직 나오고 있지 않다. 자동 기술의 옹호자들은 그 과정이 타인의 지식이나 의식에 접속할 수 있다고 하며 나아가 본인의 잃었던 기억 등을 재구성하거나 영적인 기운을 해방시킨다고 주장한다. 심령술사 엘리 크리스탈은 우리의 의식 저편에 있는 진짜 자아가 우리와 끊임없이 소통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런 기술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19세기의 유명한 영매(spirit medium)인 알란 스미스(Alan Smith)는 자신의 자동 기술을 남들에게 보여줬는데 그것이 화성인들이 자신들에게 보내주는 메시지라고 주장하며 화성인용 알파벳을 고안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주장을 검증한 심리학 교수 테오도르 플로노이에 의하면 그 화성인용 알파벳은 스미스의 모국어인 프랑스어와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지적 했다.



이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자동 기술이 자아 성찰과 글쓰기 연습에 유용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결국 하나의 아이들 놀이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무의식적인 욕망과 생각들이 자동 기술로 표현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보다 정교하지 않다고 말한다. 또한 무의식 속에 진짜 자아가 있다는 주장은 소위 말해 취중진담이라는 것과 격의 차이가 크게 없다고 한다. 자동 기술은 그것이 정확하고 체계적인 틀 내에서 평가될 때 가치가 있는데 그 자체만으로 어떤 고유의 순수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외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의식적인 행위의 순수성을 왜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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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이야기 – 아낌없이 주는 나무(언론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줄거리 : 한 소년과 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소년은 나무 그늘 밑에서 잠도 자고, 그네를 매달아 타기도 하면서 나무와 친하게 지낸다. 소년이 청년이 되었을 때 소년은 그 나무에서 나온 열매를 따서 내다 판다. 나무는 아무 말 없이 소년에게 열매를 내준다. 시간이 흘러 소년이 중년이 되었을 때 소년은 아예 나무를 잘라 배를 만든다. 나무는 이번에도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몸통을 내준다. 시간이 더욱 흘러 소년은 노인이 되어 밑동밖에 남아 있지 않은 나무에게 찾아온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준 나무는 그 소년에게 자신의 밑동 부분까지 내어주며 노인이 된 소년의 의자가 되어준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우리에게 진정한 희생과 사랑에 대한 교훈을 준다. 소년의 이기심에도 불구하고 나무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다. 짧지만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목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 동화는 이기적인 인간 중심적 사고와 착취 구조를 묘하게 나무의 이타심으로 감추어 놓는 것에 성공했다. 만일 제목이 ‘무엇이든지 다 가져가는 소년’이었으면 독자들이 이야기를 읽고 느끼는 것은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즉 제목을 통해 관점을 전환시킴으로써 본질을 흐려놓아 제대로 상황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똑같은 내용이라도 제목이 ‘은혜 갚은 까치’가 아니라 ‘복 받은 나그네’라고 한다면 독자에게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사실 내용만 객관적으로 본다면 산림 자원이 어떤 식으로 활용되는지를 알 수 있을 뿐이다. 나무는 아낌없이 주지 않았다. 그저 인간만이 아낌없이 가져갔을 뿐이다.


 이렇듯이 제목은 글을 읽는 사람에게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기사 제목이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언론에서 이것이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살펴보자. 최근 사드를 성주 내 제3의 지역에 배치하는 것을 검토하겠다는 기사가 보도된 바 있다. 같은 내용을 보수 측 언론과 진보 측 언론이 어떻게 다루는지를 한번 보자. 먼저 보수 측에서는 기사 제목을 <사드 배치, 성주군內 새 지역 추천하면 적합성 조사> 라고 내보냈다. 그리고 진보 측에서는 <박대통령 사드, 성주군 ‘내’ 다른 곳 이전 검토 가능> 라고 내보냈다. 명확히 다른 제목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한 번 해석해보자. 일단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성주군 ‘내’라는 표현이다. 보수 측에서는 그것을 한자로 표기해 놓았고 진보 측에서는 ‘내’라고 표기하면서 강조를 했다. 진보 측에서는 사드 배치가 결국은 성주군 안에 있다는 것이 변함없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번에는 뒤 문장을 보자. 보수 측의 문장을 두 개로 구분해야 하는데 ‘새 지역 추천하면’과 ‘적합성 조사’라는 문장이다. 이 경우 만일 다른 적합지가 ‘있다면’ 적합성 조사를 실시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진보 측에서는 ‘이전 검토 가능’이라고 표현하면서 실제 다른 곳으로 결정될 여지가 크지 않음을 시사했다. 정리하자면 보수 측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만일 지금 결정된 부지보다 더 적합한 곳이 있다면 배치 변경을 고려해보겠다’라는 것이고 진보 측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같은 성주군 내에서 변경되는 것이기에 큰 의미가 없다’라는 것이다. 이래서 언론보도는 양 측의 이야기를 다 들어봐야 한다.

 


이와 비슷한 예를 하나 더 보자. 최근에 30대 남성이 초등학생인 의붓딸을 수차례 성폭행 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사건이 있었다. 같은 기사인데 하나는 제목이 ‘초등생 의붓딸 성폭행 30대 남성 긴급체포’였고 어느 하나는 ‘초등생 의붓딸 성폭행 30대 탈북자 긴급체포’였다. 더 재미있는 것은 양 기사에 달린 댓글이었다. 전자의 경우 주로 한국의 치안 문제, 아동 학대 및 재혼 시 아이들의 양육문제에 관한 댓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대북관계, 탈북자 범죄 문제에 관한 댓글이 주를 이루었다. 정책학에서는 의제 형성 과정에 대한 논의가 있다. 그 중 외부주도형(outside initiative model)이란 모형이 있는데 이는 의제 형성의 촉발 원인을 외부(시민단체 등)에서 찾는 것이다. 즉 외부주도 모형은 정부 조직 밖에 있는 비정부 집단 등에 의하여 정책문제가 제기되고 이것이 국민들의 쟁점으로 확산되어 그 여론의 압력에 의해 정부가 공식의제로 채택한다는 것이다. 이는 주로 특별한 사건에 의해 촉발되는데 그런 사건은 언론을 통해 드러나게 된다. 정리하자면 비정부 집단이 위의 두 기사 중에 어느 것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인식하는 문제가 달라지고 따라서 정부의 해결 방안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바로 우리 국민이 언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다시 옛날이야기로 돌아오자. 만일 우리가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단지 나무의 이타적 희생이라는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면 이 사회는 바뀌지 아무것도 않을 것이다. 인간의 무분별한 환경 자원의 개발을 나무라는 ‘무생물’의 아름다운 희생으로 교묘하게 포장함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물론 정작 이 이야기는 이타적으로 행동하자는 것이라기보다는 소년의 이기심을 나무의 이타심과 대조하여 자기희생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사실 이야기의 원래 제목은 The giving tree, 즉 그냥 ‘주는 나무’였다). 단지 제목이 사람의 인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려는 의도로 조금은 비꼬아 해석했다. 아무튼 우리가 조금 더 포장의 눈속임에서 벗어나 사실 관계 자체에 대해 주목할 때야 비로소 사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 하고 싶다. 아낌없이 주지 말자. 그 대신 왜 줘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자. 그 의문들을 통해 거꾸로 소년에게 교훈을 주자.


Posted by 독방의무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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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이야기 - 황금알을 낳는 오리(배를 가른 오리 다시 살리기)


줄거리 : 어느 가난한 농부가 거위 한 마리를 발견했다. 그런데 이 거위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거위는 하루에 하나씩 황금알을 낳았다. 농부는 황금알이 늘어날 때마다 부자가 된다는 생각에 뛸 듯이 기뻤다. 그러나 농부는 하루에 하나씩만 알을 낳는 거위가 못마땅했다. 농부는 거위 뱃속에 더 많은 황금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결국 거위의 배를 가르기로 했다. 농부는 거위의 배를 갈랐지만 결국 그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최근 포켓몬 고가 큰 이슈다. 이 게임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지명수배자가 스스로 경찰서에 들어가는가 하면 속초 시장이 홍보를 위해 스스로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의상을 입고 나오기도 했다. 먼저 '포켓몬 go(Pokémon Go)'란 나이앤틱(Niantic)이 개발한 증강현실 모바일 게임이다. 2016년 7월 6일 미국 등에서 출시되어 7월 16일 기준으로 총 35개 국가에서 정식 출시되었다. 이용자의 현실 공간 위치에 따라 모바일 기기 상에 출현하는 가상의 포켓몬을 포획하고 훈련시키며 다른 사용자와 대전을 하고 거래도 할 수 있다. 한편 포켓몬이란 ‘주머니 속의 괴물’이란 뜻인 ‘포켓 몬스터(Pocket Monster)’의 줄임말로 1995년 일본 닌텐도에서 개발한 롤플레잉 게임과 그 게임을 바탕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을 통칭하는 말이다. 포켓몬은 이후 문구류, 의류, 영화, 캐릭터 상품 등으로 만들어져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런데 여러 가지 문제로 한국에서는 서비스가 되지 않던 차에 마침 속초에서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속초로 몰려드는 사태가 빚어지고만 것이다.


 뒤늦게 이와 관련한 뉴스와 분석 등이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서는 포켓몬 고에서 사용된 기술이 이미 한국에서 몇 년 전에 개발되어 얼마간 상용화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즉 증강 현실 기술은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충분이 활용 가능한 기술이었다는 말이 된다(증강현실과 가상현실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은 자신(객체)과 배경·환경 모두 현실이 아닌 가상의 이미지를 사용하는데 반해,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은 현실의 이미지나 배경에 3차원 가상 이미지를 겹쳐서 하나의 영상으로 보여주는 기술이다). 결국 그렇다면 이런 차이는 어디서 나왔는가? 바로 콘텐츠다. 이번 경우는 기술의 중요성 보다는 콘텐츠와 그 사업화에 성공 요인이 있다. 그런데 여기에 국산 캐릭터인 ‘뽀로로’를 활용하여 증강 현실 기반 게임을 만든다고 한다. 포켓몬 고의 성공요인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발상이다. 포켓몬이 갖고 있던 애초의 콘텐츠 컨셉이 포획과 대결이었기에 가능했던 성공이지 단순히 콘텐츠의 결합 문제로 오해를 하고 있다면 평생 포켓몬 고의 뒤만 바라보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도 포켓몬 go 같은 것, 예를 들어 뽀로로 go 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뽀로로라는 컨텐츠가 갖고 있는 컨셉에 어울리는 새로운 증강현실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비슷한 일은 이제 한국에서 하루 이틀의 이야기가 아니다. 무언가 아이템이 발굴되면 박수를 치며 황금알을 기다리다가 결국은 배를 가른다. 그리고 옆집 오리를 보고는 죽은 오리 배를 애써 꿰매려고 노력한다. 애초에 문제의 원인을 잘못 파악했기 때문에 처방이 옳을 수가 없다. 필자가 조심스럽게 향후 1년 이내에 일어날 일을 예측한다면 다음과 같다.

① 포켓몬 고의 열풍으로 말미암아 한국형 포켓몬 고의 개발을 위해 정부에서 관련 예산을 확대하고 배분한다.

② 많은 기업들이 해당 보조금 및 지원을 받기 위해 우후죽순으로 관련 사업에 지원을 한다.

③ 지원을 받은 많은 기업들이 한국형 포켓몬 고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각종 규제에 부딪힌다.

④ 점점 관련 개발은 진척이 안 되고 시간만 흐른다.

⑤ 막상 게임이 출시되었으나 이미 더 높은 수준의 게임이 출시되어 경쟁력을 상실한다.

⑥ 이로 인한 예산이 얼마나 낭비되었는지에 대해 기사가 나온다.

⑦ ⑤에서 나왔던 새로운 게임의 유행 때문에 ①부터 다시 반복함.

 

왜 이런 예측이 가능하냐면 콘텐츠 산업의 진흥을 위해서는 예산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규제의 완화고 나아가 정책의 일관성이기 때문이다(물론 포켓몬 고의 경우는 지리정보시스템과 관련하여 한국적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일례가 바로 ‘셧다운제’다. 셧다운제란 16세 미만(도입 당시 18세)의 청소년에게 심야시간의 인터넷 게임 제공을 제한하는 제도로 밤 10시가 되면 16세 미만은 자동으로 게임을 할 수 없게 하는 정책이다. 현재 제도 도입 5년 만에 폐지가 거론되는, 정확히는 보호자 선택제로 바뀌는 이 제도와 관련해 웃지 못 할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다. 2012년에 프로게이머 이승현 선수는 프랑스에서 개최된 스타크래프트2 게임 대회에 16세의 나이로 한국대표선발전 준결승전에 진출하게 된다. 외국 시청자가 많고 해외에서 펼쳐지는 경기였기에 심야시간에 개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이기면 한국대표로 선발되며 또한 500달러의 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 워낙 한국이 게임 강국이었기 때문에 해외 시청자가 약 일 만 명이나 되었었다. 그러나 실수(?)로 이승현 선수는 자신의 아이디를 사용했다. 경기 막판에 밤 10시가 가까이 되었고 이승현 선수는 마음이 급한 나머지 무리수를 두다가 결국 패배하게 되어 선발전에서 탈락하게 되었다(이승현 선수는 그로부터 2년 뒤 당당하게 세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당시 중계를 보던 외국인들은 당황스러운 상황에 어이가 없어 했다. 단순히 그 당시 경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스스로 한국이 게임 강국이라고 말하며 E-SPORTS 육성을 위한 지원을 확대하고 있던 시기였다는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즉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던 셈이다.

 


게임 산업은 한국에 있어 황금알을 낳는 오리였다. 그러나 현재 국산 온라인게임은 점차 사양의 길을 걷고 있다. 한국 고유 콘텐츠의 부재, 각종 규제 그리고 기업의 단기적 시각에 의한 무리한 수익 구조 형성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 특히 기업의 무리한 수익 구조 형성은 확률형 게임 아이템의 무분별한 양산을 가져오게 되었고 이는 결국 또 다른 규제를 불러오는 원인이 되었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 오리의 배를 가른 것이다. 그리고는 지금에 와서야 다시 배를 꿰매서 살려야 한다고 소리치고 있다. 필자가 얼마 전에 일본에 다녀와서 느낀 것이 있었다. 가장 부러운 것은 그 콘텐츠의 풍부함과 이를 이용한 사업화였다. 필자가 느끼기에 일본은 상상력에 대해서는 규제를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그것이 바로 일본이라는 국가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았다. 수익을 위해 콘텐츠에 대한 모든 규제를 풀고 또 사업화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모순적인 정책을 통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상태 때문에 예산을 낭비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죽은 오리는 살릴 수 없으니까.



Posted by 독방의무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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