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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이야기 – 개미와 베짱이(행복한 개미가 되기 위한 길)



줄거리 :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 여름에 개미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일했지만 베짱이는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놀기만 했다. 개미들은 부지런히 먹을 것을 날랐다. 개미는 베짱이에게 곧 겨울이 오니 일을 하라고 말했지만 베짱이는 듣지 않았다. 어느 새 겨울이 왔다. 베짱이가 먹을 것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결국 베짱이는 먹을 것을 많이 쌓아 둔 개미에게 찾아갔다. 개미는 베짱이를 불쌍하게 생각해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고 베짱이는 반성했다(베짱이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아 베짱이가 굶어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는 최근에 개미는 ‘흙수저’로, 베짱이는 ‘금수저’로 비유되어 현 세태를 풍자하는데 쓰이곤 했다. 이 이야기의 주된 교훈은 준비하는 삶, 노동의 가치에 대한 것이었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이 개미를 보면 대한민국의 암울한 사회상을 대변하는 것 같다. 작년 한국의 연간 1인당 노동시간은 2,124시간으로 OECD에서 2위를 차지했다. 가장 적은 독일과 비교할 때 독일인보다 연간 약 4개월을 더 일하는 셈이다. 동기간 UN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행복지수가 58위였으며 독일은 16위였다. 즉 한국인은 독일인보다 일은 더 하지만 덜 행복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베짱이가 부러운 생각마저 든다. 대체 왜 개미는 평생 일을 하지만 행복할 수 없는 것일까.

 행복하기 위해서는 좋은 소비가 필요하다. 즉 잘 먹고 잘 놀고 잘 마셔야 한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극심한 부의 양극화는 소비를 절제하게 하고, 결국 이로 인해 내수 경기 악화의 악순환이 된다. 또한 이는 계층 간 이동을 더욱 어렵게 하여 미래에 대한 희망마저 빼앗는다. 행복할 수가 없다. 피케티 교수(Thomas Piketty)는 부의 양극화를 자본수익률과 경제성장률로 설명하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대시대부터 자본수익률(r)은 꾸준하게 4~5%를 유지한 반면에 경제성장률(g)는 1% 정도를 유지했다. 그러나 산업혁명이후 경제성장률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자본수익률에 가까워졌다(세금을 제외하면 앞질렀던 적도 있다고 본다). 피케티는 이 시기에 부의 양극화가 개선되었다고 한다. 즉 자본수익률과 경제성장률의 격차가 줄어들 때 부의 양극화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시대에서는 경제성장의 상승률은 감소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부의 양극화가 다시 심화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그의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지적했던 것이다. 결국 이를 해결하기 위해 피케티는 부유세(net wealth tax)를 주장하게 되는데 맨큐 교수(Gregory Mankiw) 등은 여러 가지 근거를 통해 이에 대해 비판했다(대표적인 것이 항상 ‘r>g’이 성립한다는 것인데 나중에 피케티는 이에 대한 오류를 인정했다). 다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문제 해결에 있어 피케티가 세금의 중요성을 지적했다는 것이다.

자본수익률과 경제성장률의 차이를 좁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법인세를 비롯한 세금을 올리는 것과 노동 소득을 증가, 즉 실질 임금을 상승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1970년대까지는 세금도 꾸준히 올랐으며 그만큼 공공재도 확대되어왔다. 또한 노동생산성이 꾸준히 증가하여 그만큼 실질 임금도 상승했었다. 피케티의 주장에 따르면 바로 이 시기가 부의 양극화가 가장 완화된 시기, 즉 황금 시기였다. 그러나 이때를 기점으로 새로운 논리로 업그레이드한 이론이 나타나는데 바로 신자유주의 사상이었다. 


당시 영국은 만성적인 재정 적자와 복지병으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철의 수상이라 불리는 영국의 대처 수상(Margaret Thatcher)은 복지병을 해결하기 위해 하이에크(Friedrich Hayek)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사상을 이론적 배경으로 한 정책을 단행했다. 그 정책이란 경제적으로는 세금인하와 민영화 등 정부의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고 철학적으로는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대처의 

"사회 따위란 없다. 오직 남자와 여자인 개인이 있을 뿐이다." 

란 발언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정책은 레이건 정부의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로 연결되기에 이른다. 이것이 본격적인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의 시작이며 동시에 부의 양극화 심화와 실질 임금 동결(노동 생산성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의 시작이다. 바로 지금의 대한민국이 그렇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그렇다면 1970년대 이전에는 어떻게 부의 양극화가 완화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세계 2차 대전의 끔찍한 경험과 전후 복구를 위한 경제 성장은 역설적으로 자유민주주의의 확대를 가져왔다. 이에 따라 참정권이 확대되었으며 자연스럽게 노동자의 정치 참여가 활발해졌다. 이에 따라 정당에서는 노동자의 요구를 많이 수용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했으며 또 많은 부분 반영되었다. 미시적으로는 실질 임금의 상승이며 거시적으로는 정부의 시장 개입을 불러왔다. 물론 이 당시에는 경제가 폭발적으로 확대되어 기업이 노동자의 요구를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의 심화가 부의 양극화를 완화하는 것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바로 지금의 대한민국이 주목해야 한다.

 다시 처음의 이야기를 해보자. 개미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노동시간이 감소해야하는 동시에 실질임금이 상승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 이를 위해 최저 임금을 10,000원으로 올린다면 영세 자영업자들은 당장 길거리로 나앉아야 한다. 그렇다고 국가가 세금으로 이를 다 보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현재 대기업의 사내유보금 논의는 바로 이 부분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는 것이다. 사내유보금이란 기업이 순이익 가운데 세금이나 배당금, 임원 상여금 등으로 외부에 유출되는 부분을 제외하고 기업 안에 적립하는 금액을 의미한다. 기업은 이 사내유보금으로 재투자를 하거나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다. 사내유보금은 현금성 자산이나 다른 고정자산으로 준비할 수 있는데 이 사내유보금이 국내 5대기업의 경우 합이 약 322조라는 것이다. 바로 일부에서 이 돈으로 노동자의 실질 임금을 상승시키자는 것이다. 322조 중 현금성 자산의 비율 논쟁, 사내유보금으로 기업의 부채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 재투자를 안 할 시 이를 세금으로 걷어서 국가가 공공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 등에 대해 지금 이 자리에서 시시비비를 가릴 수 없고 필자가 가릴 능력도 없다. 사실 사내유보금의 처리 문제는 하나의 방법에 불과하다. 확실한 것은 어떤 방법이든 그러기 위해서 국민의 적극적 정치 참여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부의 양극화가 완화되었던 시기에는 국민의 정치 참여가 활발하던 시기였으므로, 개인이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여 노동시간을 줄이고 실질 임금을 상승시켜 행복한 개미가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베짱이들도 적당히 소비하고 적당히 노동하여 내수 경기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내수 경기가 활성화되면 자연스럽게 대기업의 재투자가 증가할 가능성이 커지며 이는 경기 부양과 그에 따른 일자리 창출을 이끌 것이다. 그러면 다 행복해질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당신의 단 한 번의 정치 참여로 가능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그 얼마나 멋진 일인가. 물론 필자가 말하는 것은 진보 정당이 정권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 아닌 정당 간 균형이라는 전제 아래 타당하다. 이 멋진 일을 두고서 매일 정치권, 그리고 상대 세력에 대한 비난만을 하고 사회가 바뀌기를 바라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보수도 옳고 진보도 옳다. 그러나 그 양극단의 사고는 언제나 그르다. 그래서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한 것이다.

 한 때 우스갯소리로 무슨 일만 터지면 헬조선(현재의 대한민국 상황을 비하해서 이르는 표현)을 떠나 이민을 간다는 이야기가 유행이었다. 왜 벌써부터 이 땅을 포기하는가. 이민을 갈 계획을 세우는 대신, 주위의 동료들과 함께 정치 참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행동에 옮기는 것은 어떨까.

Posted by 독방의무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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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이야기 – 양치기 소년(믿지도 말고 속지도 말자)

줄거리 : 어느 한 마을에 양치기 소년이 살았다. 양치기 소년은 어느 날 너무 심심해서 거짓말로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쳤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이 늑대를 쫓으려고 달려왔다. 사람들이 화를 내며 돌아갔지만 그것이 너무 재미있어서 양치기 소년은 몇 번 거짓말을 했다. 어느 날 진짜로 늑대가 나타나서 양치기소년이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쳤으나 동네사람들은 나타나지 않았고, 양들은 모두 죽고 말았다.

모두 이 교훈을 ‘거짓말을 하지 말자.’로 알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얻을 수 있는 더 큰 교훈은 ‘큰 재난은 우리들의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어렸을 적 수업시간에 갑자기 화재발생경고가 울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 때마다 수업을 진행하던 선생님들은 백이면 백,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그냥 수업을 진행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소름끼치고 무책임한 행동 습관이 아닐 수 없다. 양치기소년은 일종의 경보 장치다. 가장 첫 번째 사건 때 경보 장치가 고장(?)났다면 응당 교체했어야 했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고, 아마 다음엔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으리라. 결국 그것이 화근이었으며 양떼의 죽음이라는 큰 재난을 감수해야했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건도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이미 업무의 과중과 잦은 스크린 도어 결함 등이 지적되어 왔었다. 이 때 응당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 그러나 이를 단지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려는 ‘노력’까지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보자. 우리는 정치인들이 다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그 거짓말쟁이가 교체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정치에 대해 분노와 실망을 표출함에도 그들을 바꾸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늑대가 양을 잡아먹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안전을 특정 소수에 의존할 때 어떻게 사회재난이 발생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바보 같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효율성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행정학에서도 가외성(redundancy)은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가외성이란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오류 발생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체제의 신뢰성과 적응성을 높이기 위해 중첩성(overlapping)과 중복성(duplication)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개념이다. 같은 업무의 전담부서를 2개 이상으로 구성하거나 예비 인력 등의 확충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안전이나 위생의 영역에서 필요하다. 이를 이야기에 적용하자면 양치기 소년 단 한사람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양치기 소년을 한 명을 더 두었어야 한다는 교훈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랬다면 단 한 사람이 거짓말을 했다고 해서 양들이 모두 잡아먹히는 최악의 상황은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안전의 영역에서 지나친 효율성의 추구는 애초의 목적을 망각하게 되며, 투입 비용에 비해 사회적으로 부담해야 할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또한 이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결국 국민이 된다. 즉 효율(이익)을 증가시키기 위해 인력을 감소시킨 것이 고인이 된 김군이라는 큰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온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안전 불감증이라는 것은 재난의 작은 경고단계를 사소하게 취급하는 것에서 시작되며 그 책임은 우리 각자에게 있다. 따라서 고장 나버린 시스템과 믿을 수 없는 정치인, 비효과적 행정체계를 불신하고 우리 각자가 안전에 대한 방비를 철저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불신의 미학’이다.

새로운 줄거리 : 어느 한 마을에 양치기 소년이 살았다. 양치기 소년은 어느 날 너무 심심해서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쳤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이 늑대를 쫓으려고 달려왔다. 사람들이 화를 내었고 그 자리에서 양치기 소년을 해고하는 동시에 2명의 양치기 소년을 정규직으로 고용하였고 1명을 예비인력으로 상시 준비시켰다. 또한 양치기 소년의 법적의무와 권리를 성문화하였으며 나아가 늑대가 나타나는 상황에 대한 훈련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게 되었다.

 

Posted by 독방의무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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